▷그렇다고 해서 고교가 입시학원과 같아서는 곤란하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표현할 만큼 고교 시절은 생애 주기에서 감성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다. 이때 꿈을 한껏 키우도록 학교가 적절한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결국 고교 교육은 입시에 영향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 연결고리는 ‘종속 관계’가 아닌 ‘느슨한 관계’가 바람직한 것이다. 대학이 뽑으려는 인재의 기준을 지나치게 좁혀 버리면 일선 고교는 그 제한된 틀 속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고 고교 시절에 필수적인 교육이 배제되는 위험한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영어 강의를 확대하고 교수 정년심사제를 강화하는 등 대학 개혁을 선도해온 KAIST가 신입생 전형에서도 획기적인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2010학년도부터 전형 방식을 미리 알려주지 않고 입시를 치르겠다는 것이다. 전형 방식을 발표하면 사교육을 통해 준비하는 학생이 많아 ‘능력의 진위’를 가리기 어렵기 때문에 ‘무(無)요강 입시’를 하겠다는 설명이다. 창의성을 강조하는 KAIST다운 발상의 전환이다.
▷아무리 사회가 대학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해도 대학들은 이기적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입시에서 우수한 인재를 뽑으려 하는 것은 대학의 본능이다. 역대 어떤 정부도 이런 대학의 이기주의를 막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는 지난 시절과는 크게 다를 것이다. 저(低)출산 세태 속에서 대학의 생존은 누가 시대에 맞는 인재를 선점하느냐에 달려 있다. KAIST의 입시 실험은 다른 대학들을 바짝 긴장시킬 만하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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