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분유(粉乳)

  • 입력 2008년 10월 3일 02시 58분


분유에 대한 첫 기록은 마르코 폴로의 기행문에서 발견됐다. 이탈리아 여행가였던 마르코 폴로는 몽골 타타르족이 쿠빌라이 칸 시대 이래 햇볕에 말린 우유가루를 반죽 형태로 갖고 다닌다고 썼다. 유목민인 몽골족은 우유의 보관과 유통이 쉽도록 다양한 가공기술을 개발했다. 소젖과 양젖으로는 버터 치즈 요구르트를, 말젖으로는 아이락 술을 만들었다. 우유에 얼음, 설탕을 섞은 아이스크림도 몽골이 발상지다. 분유도 그런 발명품 중 하나였다.

▷한국인에게 분유는 근대와 미국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1950년대 미국이 무상으로 지원했던 밀가루와 분유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엄마가 전지분유에 뜨거운 물을 부어 우유를 만들어주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침을 삼키며 기다렸던 기억을 중년 이상 연령층은 공유하고 있다. 1965년 아기용 조제분유가 생산되면서 분유는 모유를 대체하는 아기들의 주식(主食)으로 자리 잡았다. 체격이 좋은 아이에겐 “분유 먹고 컸느냐”고 묻곤 했던 시절이다.

▷일부 수입 과자에서만 검출됐던 멜라민이 뉴질랜드산 분유첨가물에서도 검출됐다는 뉴스가 중국산 멜라민 분유 공포를 키우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모유 수유율이 가장 낮은 나라로, 조제분유 시장이 매우 크다. 분유첨가물인 락토페린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엄마들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락토페린은 면역 증강을 위한 첨가물로 분유 원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003∼0.07%라고 한다.

▷먹을거리에 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많다. 보신(補身)과 정력에 좋다면 뱀, 굼벵이, 지렁이까지도 주저 없이 먹으면서 일반 식품의 안전성에는 극도로 민감하다. 조류독감이 발생했다고 닭고기와 오리고기까지 안 먹는 나라는 한국 말고 세계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광우병 괴담’ 파동으로 학습효과를 얻었다. 정부는 불투명한 정보 공개와 늑장 대응이 불안을 키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은 불확실한 정보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다행히 국내산 분유에선 멜라민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분유와 분유첨가물쯤은 구별할 줄 아는 젊은 엄마의 지혜도 필요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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