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은 강진 해남 길, 왼쪽은 보성 고흥 길/길은 모두 노래로 이어지고 포구에서 사라지네/그러나 사라져선 안될 노래 하나/장흥 회진항에 묵었다 하니/거기 선학동 가는 길 서글픈 자루도 짊어지네/약국과 뱃길 묻다가 마침내 그 주막에 드네
어이 가리 어이 가리/산 첩첩 물 첩첩 다리 아파 어이 가리/해는 지고 달 드는데/주막 없어 어이 가리
이청준 선생은 살아생전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항상 조용했고, 온후한 안색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럿이 어울려 쓰라린 농담과 삿대질이 오가는 난삽한 술좌석에서도 처음 가졌던 그 자세에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순간 몸에 스민 병을 눈치 챘을 때도 조금의 동요나 초조함을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침착하고 기품 있게 받아들여 주위를 숙연하게 하였습니다. 너무나 고고하여 그 성품을 섣불리 흉내 낼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만이 그런 자세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청준 선생이 노래했듯이 우리는 때때로 산 첩첩 물 첩첩 다리 아파서 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한순간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다면 영원한 적멸의 공간으로 떨어져 고통도, 폭력과 박해와 저주도, 수치와 굴욕도, 분노도 없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유혹에 현혹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우리의 생애는 우리가 그토록 떨쳐 버리고 싶은 굴욕과 분노와 수치와 고통을 모두 끌어안고 부딪쳐서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이 안겨주는 성취감이 있기에 눈부신 가치와 명분을 가집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 중에서 생명 한 가지는 유일하게 신의 몫이기에 내 것으로 착각하고 함부로 예단하거나 휘둘러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 삶은 섶다리 위를 걷는 나그네처럼 물결에 어른거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굽어보며 묵묵히, 그리고 유장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김주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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