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영화제는 ‘힘내라 한국영화’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초창기 모험에 가까웠던 부산영화제가 예상을 깨고 성공하면서 한국영화는 전성시대를 맞았다. 하지만 이번 영화제 기간 중 열린 세미나에서 강한섭 영화진흥위원장이 ‘대공황’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한국영화의 상황은 심각하다. 투자 자본이 떠나고 제작 편수가 격감하고 있다. 강 위원장의 ‘대공황’ 발언은 비관론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따랐지만 ‘내년과 후년에도 정상화되지 않으면 영화산업이 붕괴될 우려가 있다’는 예측은 흘려 들을 말이 아니다.
▷영화 불황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관람객들이 영화관에 가지 않더라도 영상을 즐길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늘어났다. 신종 미디어의 등장 때문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관객층은 훨씬 생동감 있는 뮤지컬 등 공연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영화계가 그간의 호황을 잘 활용하지 못한 채 ‘영화 권력’의 주도권을 놓고 내분을 계속한 탓도 있다.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상상력의 한계다. 영화 말고도 각종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홍수를 이루는데도 기존 작품들을 뛰어넘는 스토리와 영상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비관할 것까지는 없을 듯하다. 홍콩의 왕자웨이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올 때마다 한국의 젊은 팬들이 영화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이것이 한국 영화의 밑거름”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이런 관객들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다만, 지난 몇 년간 일부 영화인들이 빠졌던 ‘이념지향’에선 벗어나야 한다. 예술에서 이념은 독소다. 사회주의 국가에 예술다운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영화계가 상상력을 원한다면 이념과 거리부터 둘 일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