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 중요하다고 외쳐왔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감당해야 하는 삶은 고단하다. 아침마다 일어나 학교 가고 회사 가고 시험 보고 경쟁해야만 먹고살 수 있다는 시장경제는 매정하기 짝이 없다.
위기의 시대, 이념은 사치다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에 드디어 사필귀정이 왔다는 듯 미국모델은 틀렸다고 외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부문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참에 탈규제·민영화·공공개혁 등 3종 전면반대를 관철하고 요람부터 무덤까지의 사회복지국가를 완성할 태세다.
고마울 따름이다. 오죽하면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며 묻지 마 살인이 판을 치겠나. 이 사악한 자본주의 대신 정부가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그리하여 전 국민이 정부밥을 먹게 된다면 안락한 삶이 보장될 것 같다. 여기에 현직 땐 각종 보조금 가로채기와 눈먼 세금 빼돌리기, 퇴직 땐 낙하산 취업이나 전관예우까지 완벽하게 챙겨 나온다면!
그러나 정부 개입의 무한확장이 소련의 멸망을 가져왔다는 건 역사가 증명한다. 설령 정부 확대가 불가피하다 해도 공조직의 도덕적 해이가 은행 뺨치는 우리나라 같은 데선 덮어놓고 찬성하기 힘들다. 미국서도 규제의 필요성은 주로 금융부문에서 논의되는 형편이다.
‘케인스가 부활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케인스 경제학이 정말 대공황을 치유했는지는 학자마다 평가가 다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라는 평전을 쓴 로버트 스키델스키 씨는 “완전고용을 이룩한 건 뉴딜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이라고 했다. 1939년까지 미국의 실업률이 17%나 됐던 것만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어차피 하나의 사실을 놓고도 시각과 해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자칭 진보인사들은 이제야말로 정부가 부자들의 금밥통을 빼앗아 사회적 약자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유럽모델의 원조 스웨덴이 1990년대 초 금융위기 때 구조개혁을 하면서 복지 혜택도 대폭 줄였고, 최근 선진국에선 어떤 일이든 일을 해야만 최저생계비를 보전해 주는 추세엔 입 싹 씻고 있다. 그들 말만 믿고 있다간 다 같이 손가락 빨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이념 빼고, 무엇이 내게 가장 이로운 생존법인지 냉철하게 따지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나는 사람답게 사는 가장 중요한 기준의 하나가 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자식을 학교에 보내면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최소한 제 밥벌이는 하고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세상일수록 사막에 갖다 놔도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실력도 길러주지 못하면서 등록금만 받아먹는 교육은 사기다.
정부는 국민이 제 밥벌이는 할 수 있도록 과감한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수도권 규제를 풀고 비정규직법을 더 유연하게 바꾸면 당장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 개혁은 위기 때 가능하다. 10년 전에 못다 했고, 한동안은 거꾸로 간 개혁을 이제라도 완성한다면 그야말로 국가서열을 바꿀 수도 있다.
언제는 정부만 믿고 살았더냐
문제는 이 정부에 그만한 용기가 있느냐다. 설사 위기가 온다 해도 정부밥 먹는 사람들로선 밥줄 끊어질 일 없어 아쉬울 게 없는 모양이다. 국민이 살려달라고 매달릴수록 정부는 재정지출도, 권세도 마냥 키울 수 있어 나쁘지 않다. 개인은 자유를 누리고 정부가 책임져줬으면 참 좋겠지만, 거꾸로 자유는 정부가 만끽하고 책임은 서민이 떠안는 비극이 올지 모른다.
결국 제 밥벌이는 제가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톱 대학 MBA과정 학생들도 “금융위기는 분명 극복될 것이고, 평생 5, 6개 직업을 갖는 게 당연하므로, 이럴 때일수록 복수전공을 늘려 고용능력을 키울 태세”라는 게 뉴욕타임스 보도다. 글로벌 위기의 진앙이 이럴진대 우리에겐 우왕좌왕할 여유가 없다. 자칫하면 88만 원짜리 일자리도 없어 못 잡는 수가 있다.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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