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로펌 러시

  • 입력 2008년 11월 3일 03시 01분


국내 최대의 로펌(법률회사)은 1973년에 설립된 ‘김&장’이다. 미국 하버드 로스쿨 출신 김영무 씨와 판사 출신 장수길 변호사가 시작한 이 로펌은 변호사 400여 명을 거느린 동양 최대의 로펌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수많은 로펌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이젠 로펌 소속이 아니면 변호사 행세를 못할 정도다. 법률시장은 대형 로펌들의 각축장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미국 영국 등 해외 로펌의 국내 진출에 대비하는 한편 해외진출 경쟁까지 벌여야 하는 로펌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다.

▷법조계의 인재 분포로 볼 때도 법원 검찰의 시대가 가고 로펌 시대가 달려오는 양상이다. 대법관과 검찰총장을 지낸 사람들도 단독으로 사무실을 내기보다 로펌에 들어가는 추세다. 최근 10∼20년만 해도 로펌 출신 변호사들의 장차관급 등 요직 등용은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검찰총장 또는 법무장관을 지낸 이종남(세종), 최경원(김&장), 이명재(태평양), 김승규(로고스), 천정배(김&장), 강금실(지평) 씨와 오세훈(지성) 서울시장이 로펌 출신이다. 물론 판검사로 있다가 로펌에 들어간 사람도 많다.

▷로펌 출신이 대법관, 헌법재판관으로 진출하는 사례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맨 파워 면에서 법원 검찰보다 로펌계(界)가 인재의 집합소라는 게 법조계의 상식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우수한 신진 변호사들이 로펌으로 집중되는 현상은 당연하다. 내년 봄에 제대하는 군법무관 94명 중 36명(38%)이 로펌행을 택했다. 그것도 사법연수원 성적 최상위 1∼10등 가운데 무려 8명이 로펌으로 간다. 판사 지망이 45명으로 절반을 밑돈 것은 처음이다. 검사 지망은 단 12명이어서 검찰의 자존심이 상하게 됐다.

▷변호사들의 로펌 러시는 경제적 이유가 크다. 과거엔 판검사 직업 자체가 명예감과 자긍심을 높여 주는 충분한 인센티브로 작용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장점이 빛을 잃기 시작했다. 격무와 경직된 조직문화, 고소고발 및 소송 관계자들이 주는 스트레스도 원인으로 꼽힌다. 승진의 문마저 좁다. 판사는 임관 성적(사법시험+사법연수원 성적)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출세는 성적순’이다. 이래저래 로펌은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고 있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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