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파워 격차가 서러운 한국
그러나 통화스와프는 구세주가 아니다. 우선 이번 협정은 내년 4월 말까지 만기 6개월짜리 단기계약이다. 협정이 자동 연장된다 하더라도 통화스와프가 불가피한 상황을 실제로 맞는다면 불행한 일이다. 그런 국면이라면 우리 경제가 붕괴되지는 않았다 해도 ‘준환란(準換亂)’ 상태 아니겠는가.
이런 지경에 처하지 않으려면 정부 은행 기업 국민이 함께 자구(自救)에 성공해야 한다. 자구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자구노력을 게을리 하면 더 혹독한 고통이 기다릴 것이다. 요컨대 한국경제의 구세주는 ‘스스로를 지키려는 정신과 피땀’ 말고 따로 없다.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자체의 효력이 입증하듯이 양자(兩者)건 다자(多者)건 국제공조는 두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국제공조에 참여하고 성공하는 것도 우리가 받는 만큼 줄 것이 있고, 힘과 신뢰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대가 없이 거저 얻을 공짜는 없다. 한중일 협력도 우리 정부가 먼저 말을 꺼냈지만 중국과 일본을 견인하며 주도적으로 구체화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약세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400억 달러 안팎으로 세계 6위다. 이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지나친 자기폄훼다. 그렇긴 해도 외채 구조의 취약성, 국제 투기세력의 공격 용이성 등을 감안할 때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요동치는 시장이 이를 웅변한다.
외환보유액이 1조 달러로 세계 2위인 일본뿐 아니라 1조9000억 달러로 세계 1위인 중국조차도 금융위기 무풍지대는 아니다. 그러나 중·일은 우리가 비교하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여유가 있고, 국제공조 문제에서도 발언권이 막강하다.
한중일의 달러파워 격차는 당장 금융위기 대응에서 상호협력 또는 의존관계의 비대칭성을 만들어낸다. 격차가 커질수록 한중, 한일 외교관계 전반의 비대칭성도 커질 것이다. 역사문제를 비롯한 정치적 발언력의 비대칭성도 포함된다. 이미 중국과 일본에 대해 ‘할 말을 다 못할’ 의존상황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달러 자립’에 결정적으로 실패한다면 대중(對中) 대일(對日)관계에서 더 많은 굴욕을 견뎌야 할 것이다.
정부 기업 국민 自救에 총참여를
달러 자립을 위해선 정부가 정말 잘해야 한다. 지난달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일본은행 전 부총재 안자이 다카시 세븐은행 사장은 “환율을 방어한다며 달러를 너무 쉽게 써서는 안 된다”고 진지하게 충고했다.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을 명분으로 200억 달러 이상을 쓰고, 국민연금 자금으로 주식을 사들인 것은 외국인의 주식 매도-달러 유출을 돕는 결과를 낳았다. 상황과 인과(因果)에 대한 판단, 정책 결정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거듭 일깨워주는 사례다.
그렇다고 정부만 잘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서비스수지는 지난해 206억 달러 적자였고 올해 적자는 8월까지만 138억 달러에 이른다. 특히 여행, 유학 등의 수지 적자가 만만찮다. 외국인의 한국여행보다 내국인의 해외여행이 왜 많은지, 유학 행렬은 왜 늘어만 가는지, 정부도 국민들도 함께 생각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국내 숙박비와 음식값을 비롯한 서비스요금이 중국 동남아는 물론이고 일본을 비롯한 웬만한 선진국보다도 비싼 경우가 많다. 외국에 나가 돈벌이 하는 동남아인이나 중국인은 어느 제삼국보다도 한국에서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다. 우리 국민이 직업에 귀천을 두고, 힘든 일은 외면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평준화 교육 맹신자들은 평준화만 되면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자체가 허구일 뿐 아니라 평준화 교육이 유학을 부채질해 달러 유출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
국내에도 삼성전자 포스코 같은 세계일류 기업이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도 대일 무역적자는 줄어들기는커녕 해마다 늘고만 있다. 원천기술 응용기술 할 것 없이 대일 격차를 극복하는 길밖에 없다. 정부와 기업들의 전략다운 전략과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달러 전쟁이 국운(國運)을 가른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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