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창혁]국회 법사위

  • 입력 2008년 11월 6일 02시 58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보통 판검사나 변호사 출신이 많아 법조인이 아니면 ‘행세’하기 어렵다는 곳이다. 그런 ‘끼리끼리 풍토’에 제동을 건 사람이 14대 때 야당인 국민회의 조홍규 의원이다. 법조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지만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입담으로 유명한 조 의원이 법사위에 배속되자 여당의원들은 “판검사 출신도 아니면서 법사위에는 왜 왔느냐”고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조 의원은 “나도 왕년에 ‘쌀 검사’는 해봤다”고 응수했다. 판검사가 무슨 대단한 경력이나 된다고 유세(有勢)를 부리느냐는 조롱이었다.

▷한나라당의 법사위원은 거의 예외 없이 판검사나 변호사 출신이었다. 18대 법사위도 전체 16명 중 한나라당 소속 9명은 전원 법조인 출신이다. 민주당은 4명(위원장 제외)밖에 안 되고 그나마 박지원, 박영선 의원은 법조인이 아니다. 자유선진당의 조순형 의원과 친박연대의 노철래 의원도 비법조인이다. 여야 공방이 법조인 대 비법조인의 대결로 치닫기 쉬운 구조다. 그런 대결 양상이 벌어지면 대체로 비법조인의 ‘판정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비법조인들은 상식과 여론으로 법조인의 직역(職域)이기주의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조 전 의원이 그걸 보여줬다.

▷요즘 한나라당은 유선호 법사위원장이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이 많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국회 개원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민주당에 위원장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지만 정작 종합부동산세법 개정,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떼 법’ 방지법 제정, 사이버모욕죄 신설 등 야당이 반대하는 법안들을 처리해야 할 상황이 되자 난감한 표정이 역력하다. 일반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이라도 법사위를 거치지 않으면 본회의에 상정될 수 없다. 게다가 한나라당도 야당일 때 법사위원장 자리를 ‘여당 발목잡기용’으로 써먹은 전과가 있다.

▷유 위원장의 의사봉이 집권여당의 정기국회 운영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 위원장은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의 원칙을 강조한다. 여당의 독주도 용인하지 않겠지만, 민주당 당론이라고 무조건 ‘총대’를 메는 스타일이 아니다. 낙선(16대)의 쓴 경험도 있어 정치를 ‘모 아니면 도’로 재단하는 일도 없을 것 같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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