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오바마의 DNA, 교육 그리고 자유의지

  • 입력 2008년 11월 7일 20시 13분


인간의 형성에서 타고난 유전자가 중요하냐, 후천적인 성장 환경과 교육이 중요하냐는 과학계의 오래된 논쟁거리다. 이 논쟁의 양쪽 극단에 나치즘과 마르크시즘이 있다. 나치즘은 ‘나쁜 DNA’를 지닌 유대인과 동성애자를 멸종시키고, 인종적으로 우수한 아리아인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마르크시즘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개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부모로부터 전달된 유전자와 후천적 교육이나 성장 환경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DNA도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이 유전학의 최근 연구결과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 버락 후세인 오바마 2세는 말도 잘하지만, 뉴욕타임스가 ‘글을 쓸 수 있는 드문 정치인’이라고 했을 만큼 글도 잘 쓴다. ‘담대한 희망’은 그가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면서 출간한 책이다. 어느 나라나 대통령 후보들이 펴내는 책은 가공이 많아 한 인간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버지로부터의 꿈’은 오바마가 하버드대 로스쿨에 진학해 흑인 최초로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이 됐던 34세 때 출판사의 권유로 펴낸 자서전이다. 대통령 후보가 된 오바마는 재판(再版) 서문에서 “경솔한 감정 표현이 많고, 어떤 부분은 정치적으로 적절하지 못해 꼬투리를 잡힐 수 있다”고 걱정했지만 그의 퍼스낼리티 연구에 유용한 일화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아버지 DNA, 어머니 교육

어머니 더넘은 오바마에게 “너는 아버지와 두뇌와 성격 그리고 눈썹까지도 닮았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케냐 출신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아버지 버락 후세인 오바마 1세는 토머스 음보야 장학금을 받고 하와이대에 유학했다가 더넘을 만나 결혼했다. 케냐 고향 마을에는 비행기를 타본 사람은커녕 비행기를 타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도 없던 시절이었다. 아프리카 청년은 하와이대를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아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케냐의 친척들은 “버락 1세가 학교 다니길 싫어했지만 시험을 봤다 하면 언제나 1등이었다”고 회고한다.

아버지 버락 1세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씨만 뿌려놓고 자녀교육에는 소홀했다. 어머니의 교육열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의 오바마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오바마가 인도네시아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매일 오전 4시 반에 깨워 세 시간 동안 영어를 가르쳤다. 오바마가 열 살이 되자 어머니는 ‘미국 학교에서 미국 아이들과 똑같은 과정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며 아들을 하와이 외가로 보냈다. 오바마는 은행원이던 외할머니의 도움으로 부잣집 백인 아이들이 다니던 명문 사립학교 푸나호우 5학년에 입학했다.

오바마의 말솜씨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DNA 같다. 아버지 버락 1세가 하와이 술집에서 장인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백인 남자로부터 “깜둥이 옆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다”는 모욕을 당한 적이 있다. 그는 한판 붙는 대신에 인간이 가진 보편적 권리를 길게 설명했다. 버락 1세의 말이 끝나자 백인 남자가 미안해하며 “술값을 내라”며 100달러를 주었다. 그는 이 돈으로 술집에 있던 손님들의 술값을 다 내주고 남은 돈으로 그달 치 집세를 냈다. 더넘과 이혼한 버락 1세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하와이를 방문해 아들이 다니던 푸나호우 학교에서 케냐를 소개하는 강의를 했다. 오바마에게 아버지의 자부심을 심어준 명강의였다.

오바마가 받은 우수한 DNA와 교육도 그의 꿈과 실천의지가 없었더라면 꽃을 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뉴욕 컬럼비아대를 졸업한 뒤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하는 월가의 컨설팅회사에서 잘나가는 금융 담당 직원이 됐다. 그러나 2년 만에 직장생활을 접고 최초로 흑인 시장을 배출한 시카고로 갔다. 그는 악취가 풍기는 가난한 동네에서 주거와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빈민(貧民)운동에 뛰어들었다. 성실과 열정으로 시카고 운동가들 사이에 이름을 각인시켜 놓은 뒤 한 단계 더 높은 도약을 위해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

꿈과 自由意志는 유전 안돼

케냐에서 경제관료를 했던 아버지 버락 1세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성격 문제와 지나친 음주로 좌절해 실의에 젖은 삶을 살다가 46세에 교통사고로 생을 일찍 마감했다. 오바마는 한때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술과 마약에 빠져들었지만 결단력을 발휘해 끊고 철저한 자기 관리로 47세에 미국 대통령이 됐다. 꿈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통제하는 자유의지(自由意志)는 유전되지 않는다. 버락 1세와 2세의 삶에서 차이가 나는 점이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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