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김용구 근대한국외교문서 편찬위원장

  • 입력 2008년 11월 10일 03시 03분


“국권침탈에 대한 세계의 시각 알 수 있을것”

1864∼1910년 한국관련 외교문서 정부차원 첫수집

올해부터 15년간 작업…1차로 1864∼1871년 정리

“고종 원년인 1864년부터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1910년까지 50여 년 역사는 1910년 이후 현재까지 100년 역사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당시 우리가 서구열강과 주고받은 외교문서는 역사적 진실의 핵심을 담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당시의 외교문서를 수집 및 정리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보관소도 없지요.”

1864∼1910년 서구열강, 일본, 중국의 한국 관련 외교문서가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수집 및 정리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지원을 받아 올해부터 15년간 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용구(71·한림대 한림과학원장) ‘근대한국외교문서’ 편찬위원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과거 외교문서를 정리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작업은 2023년 완간을 목표로 올해 초 시작됐으며 23∼35권의 문서집으로 발간된다.

편찬위원으로 우철구(외교사) 영남대 명예교수가 프랑스, 최희재(중국근대사) 단국대 교수가 중국, 장인성(동양정치사상) 서울대 교수가 일본, 신욱희(외교정책) 서울대 교수가 미국의 외교문서를 각각 맡았다. 국사학자로는 이상찬 서울대 교수가 참가했다. 이들은 해당 국가의 문서보관소를 방문해 한국 관련 외교문서를 발굴하고 있다.

편찬위원회는 1차 작업으로 1864∼1871년의 제너럴셔먼호 사건, 병인양요, 신미양요와 관련된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의 외교문서를 수집해 2권으로 정리했으며 그 성과를 14일 서울 중구 청계천로 한국관광공사 상영관에서 발표한다.

이 문서집에는 500여 건의 외교문서(200자 원고지 5500여 쪽 분량)가 수록됐으며 이 중 150여 건은 처음 발굴된 것이다.

“프랑스와 미국의 조선 침략 목적과 과정이 더욱 명백해졌습니다. 새로 드러난 사실도 많아요. 영국이 1885년부터 2년간 전남 거문도를 점령한 ‘거문도사건’ 8년 전에 이미 미국이 거문도를 점령하려는 계획을 비밀리에 세운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양부인 남연군 묘를 도굴한 독일인 오페르트에게 자금을 지원한 장본인이 중국 상하이의 미국 외교관들이었음도 밝혀졌어요. 이 사건은 조선의 쇄국정책이 더욱 강경하게 된 계기가 됐죠.”

이뿐만이 아니다. 병인양요에서 패한 프랑스 함대의 로즈 제독이 패배 사실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해군성과 외교부가 겪은 갈등, 일본이 프랑스의 조선 침략에 동조했고 중국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사실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김 위원장은 “외교문서는 외교 상대가 서로 어떻게 인식했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당시 세계 열강이 조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19세기 말 미국의 대(對)조선 인식의 변화가 단적인 예다.

“1871년의 신미양요 때는 미국이 캘리포니아를 병합하고 태평양으로 진출하던 시기로 팽창주의자가 주류였습니다. 조선과의 외교문서가 상대적으로 많죠. 그러나 1882년 조선과 통상수호조약을 체결한 뒤 미국에서 고립주의자가 등장해 조선을 경시하게 되면서 관련 외교문서도 적어집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이 일본 외무성 문서를 마이크로필름으로 복사하면서 일본 중국에 비해 조선 관련 문서를 많이 누락시킨 것도 이 때문이에요.”

김 위원장은 “이렇게 드러난 국제 관계의 상호 인식은 당시 역사의 정신 구조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환자와 질병, 치료의 관계로 비유하면 한국은 개항 시기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은 독특한 ‘대외관계 인식의 역사적 질병’이 있습니다. 국제 관계를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보고 그에 대한 대응이 즉흥적 감정적이라는 것이죠. 150년 전의 쇄국정책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올해 미국 쇠고기 수입 과정에서 일어난 논란이나 독도 문제에 대한 대응을 보세요. 이런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진단서가 필요한데 당시 역사의 정신구조를 보여주는 외교문서가 대표적인 진단서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지금까지 그 중요한 진단서를 정리한 적이 없다. 김 위원장은 “이 때문에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첨단 디지털 시대를 살아도 국제사회가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모르고 그 흐름에 뒤처지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0년은 한일강제합방 100주년이 되는 해. ‘근대한국외교문서’ 편찬사업은 한일강제합방 100주년을 대비하는 한국 학계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1970년대 일본의 문서보관소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메이지시대인 1868∼1912년의 방대한 문서가 빼곡히 정리돼 있었습니다. 외국 학자들이 1910년 국권침탈 시기를 연구하기 위해 어디를 찾겠습니까. 일본의 시각으로 국권침탈 과정을 남긴 일본 외교문서를 보지 않겠습니까. 역사 왜곡이 되풀이되는 것을 남 탓만 할 수 없어요.”

김 위원장은 “국권을 빼앗긴 것을 우리가 비분강개했다고 해서, 당시 세계도 함께 비분강개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며 “1905∼1910년 세계가 국권침탈을 어떻게 바라보고 판단했는지 분명한 근거를 통해 세계인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개념으로 부당성을 제기할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김용구 위원장:

△1937년 인천 출생 △서울대 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1970∼1971년 일본 도쿄 동양문고(일본의 동양학 전문 연구소) 객원교수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장 △1998∼1999년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 교환교수 △현 한림대 한림과학원 원장

△‘세계외교사’(전 2권) ‘한일외교미간극비사료총서(韓日外交未刊極秘史料叢書)’ ‘외교사란 무엇인가’ ‘세계관 충돌과 한말외교사’ ‘한국개념사 총서 1 만국공법’ 등 다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