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수능 변별력의 정치학

  • 입력 2008년 11월 14일 20시 22분


해마다 이맘때 전국의 고교 3학년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마음을 졸이게 하는 연례행사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한 문제 더 맞거나 틀리는 데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수능이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학력(學力)을 제대로 검증하는 시험이 될 수 없다는 비판론도 거세다. 그러나 대학들이 여전히 내신보다 수능 성적을 더 신뢰한다. 현재로선 수능보다 나은 학력측정 방법이 없다. 수능은 고교 3년 동안 내신이 좋지 않았던 학생이 역전을 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2009학년도 수능이 지난해보다 어렵게 출제됐다. 가채점 결과 수리 ‘가’형의 경우 상위 4%에 해당하는 1등급의 커트라인이 지난해 98점(100점 만점)에서 20점 가까이 떨어질 것 같다. ‘쉬운 수능’이 계속됐던 최근 몇 년과는 달리 앞으로는 ‘어려운 수능’이 예상되고 있다. 수능의 변별력이 커지면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 점수차가 벌어져 실력 차가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확률이 커지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상위권 학생의 학력 경쟁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수능을 운영했다. 2006학년도 수능에서는 언어영역 만점자가 1만 명을 넘어 ‘실수 안 하기’ 경쟁으로 전락했다. 2008학년도 입시에서는 수능 비중을 낮추려고 점수 표기를 없애는 등급제를 도입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해마다 ‘어렵게 내지 않겠다’고 공언해 수험생들에게 ‘쉬운 수능’이 될 거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하는가 하면 EBS 수능강의 내용이 상당수 그대로 출제됐다.

▷중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도 상위권 학생들을 경쟁시켜 최우수 인재 발굴과 육성을 꾀한다. 당장 힘들더라도 경쟁을 시켜 세계무대에서 이길 수 있는 인재를 기르는 것이 국가의 임무요 생존전략이 돼야 한다. 노 정권은 이를 포기했던 것이나 다름없다. 수능이 변별력을 갖춰야만 열심히 노력한 학생이 보상받을 수 있다. 내신이 불신 받는 상황에서 수능의 변별력마저 흐려지면 로또입시로 변질돼 대학들이 우수 학생을 선발하기 어렵다. 정권교체로 수능의 난도(難度)가 높아진 현상을 두고 수능 변별력의 정치학이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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