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창혁]海軍의 새 도전

  • 입력 2008년 11월 19일 02시 59분


요즘은 ‘명성’을 잃었지만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말라카 해협의 해적들은 악명을 떨쳤다. 남중국해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말라카 해협은 좁고 암초가 많아서 활동하기가 좋았다. 인도양에서 홍해로 들어가는 아프리카 소말리아 쪽의 아덴 만도 그렇다. 깔때기처럼 생겨 바닷길이 갑자기 좁아진다.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지 않고 곧장 수에즈 운하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항로여서 전 세계 석유운반선의 30%를 포함해 한 해 모두 1만6000척의 배가 이 길을 오간다. 한국 선박도 연간 460여 척이 여기를 지난다.

▷2005년 100여 명이던 소말리아 해적이 지금은 10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해적들이 몸값으로 챙기는 돈이 연간 1억 달러나 된다고 한다. 올해 들어 9월까지 전 세계에서 모두 199건의 해적질이 있었는데 소말리아에서만 63척이 납치됐다. 선박 보험료도 10배나 뛰었다. 공격 양상도 점점 대담해져 9월엔 탱크 33대를 실은 우크라이나 화물선이 납치됐고, 엊그제는 미국 항공모함 크기의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이 납치당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올 3월 인도한 초대형 유조선이다.

▷미국의 제5함대를 비롯해 다국적 해군이 해적 소탕에 나섰지만 역시 ‘해상 게릴라전’엔 약한 모양이다. 2006년 5월 동원호 피랍 이후 우리도 함정을 파견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지만 군(軍)이 결심을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왜군(倭軍)이 명량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의 12척에 대패한 것처럼 아무리 전력이 우세해도 현지 상황에 어두우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게다가 원양(遠洋) 작전의 경험도 없다. 인질협상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온 외교통상부가 함정 파견을 적극 주장했지만 군으로서는 선뜻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현지 실사단이 다녀온 후 국방부는 ‘한번 해볼 만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일단 다음 달 국회에 해군 함정 파병동의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해군은 이순신함(4600t급) 등 원양 작전 능력을 갖춘 구축함 6척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같은 ‘미들 파워(Middle Power)’에 대양(大洋) 해군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그러나 준비만 잘하면 한국 해군에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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