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가 80세를 넘긴 이 독거노인은 내가 방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쥐구멍 속을 들쑤시며 드나들어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할머니의 눈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방 윗목에 밀어 놓는 채로 방치되어 있는 음식 찌꺼기를 몰래 축내도 할머니는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나는 톱날처럼 자라나는 이빨 때문에 여가만 있으면 나무토막을 갉아야 했는데, 그때는 사람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앙칼진 소리가 납니다. 그러나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그 소리도 잘 듣지 못했습니다. 그처럼 관대한 사람을 나는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할머니 때문에 나는 매우 만족스러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시궁창이나 드나드는 더러운 동물이라는 사람의 편견과는 달리 나는 아주 깨끗한 동물입니다. 털을 가꾸고 윤기를 보존하고 몸치장을 하느라 하루의 대부분을 보냅니다. 몸치장이 끝나면 나는 할머니 집 구석구석을 수색하거나 탐험하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거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작은 구멍, 그리고 벽 틈새와 토담, 햇볕이 들지 않는 비좁고 후미진 장소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안방과 툇마루를 이어주는 흙벽 사이에서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보물 항아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언제, 누가, 어떤 일 때문에 금괴로 가득 채운 항아리를 거기에다 묻어 두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 항아리를 차지할 수 있다면 할머니는 쪼들린 가난에서 벗어나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감싸주었던 할머니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나는 당장 잠들어 있는 할머니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입을 할머니 귀에 바짝 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할머니 구들장 아래서 금괴가 들어 있는 항아리를 발견했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잠에서 깨어나 벌떡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머리맡에 감춰두었던 몽둥이를 집어 들고 다짜고짜 나를 내리쳤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머리가 으깨지고 말았습니다.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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