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장관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 덕분에 승승장구했다. DJ는 ‘윗사람의 뜻을 간파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절대 윗사람의 뜻을 거스르는 법이 없는 사람’이란 평을 듣는 그를 대통령의전비서관과 외교안보수석으로 2년 반 동안 곁에 뒀다가 주중대사로 보냈다. 6·15 남북 정상회담 때 의전비서관으로 DJ를 수행한 그는 회담 직후 외교안보수석에 임명된 햇볕정책의 충실한 집행자였다. 노무현 정부 때는 5년 내내 베이징에서 햇볕정책 전도사 역할을 했다.
▷그런 그가 대북정책 기조가 크게 바뀐 이명박 정부의 통일부 장관이 됐으니 소신 있는 외교관이었다면 갈등도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장관 내정 직후 “실용주의에 입각해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모범답안’을 내놨다. 3월 1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햇볕정책은 추진 방법과 속도와 폭, 국민의 공감대를 얻는 방식, 합의 도출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햇볕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국정감사 때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그에게 “영혼을 파신 것 아니냐”고 물었고 그는 화를 냈다.
▷김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이명박 정권이 의도적으로 남북관계를 파탄내고 있다는 DJ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남북관계를 사랑하고 중시해서 한 말씀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발끈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명박 정부의 통일부 장관이 맞느냐”고 추궁했다. 그러자 그는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간 적이 없다. DJ 발언이 사실이라면 유감”이라고 말을 바꿔 상황을 수습했다. 김 장관의 본심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김 장관 같은 정권불문(不問) 장수(長壽) 관료에겐 ‘영혼’이 하나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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