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김대중과 김하중

  • 입력 2008년 12월 1일 02시 59분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제7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1973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2001년 10월부터 올해 3월 이명박 정부의 통일부 장관으로 발탁될 때까지 6년 5개월 동안 주중대사를 지내 직업외교관 출신으로는 최장수 대사 기록을 갖게 됐다. 노태우 정부 때 3년 동안 주중 공사로 근무하며 한중 수교에 깊이 간여한 것을 포함해 중국에서만 9년 반 동안 근무한 중국통이다.

▷김 장관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 덕분에 승승장구했다. DJ는 ‘윗사람의 뜻을 간파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절대 윗사람의 뜻을 거스르는 법이 없는 사람’이란 평을 듣는 그를 대통령의전비서관과 외교안보수석으로 2년 반 동안 곁에 뒀다가 주중대사로 보냈다. 6·15 남북 정상회담 때 의전비서관으로 DJ를 수행한 그는 회담 직후 외교안보수석에 임명된 햇볕정책의 충실한 집행자였다. 노무현 정부 때는 5년 내내 베이징에서 햇볕정책 전도사 역할을 했다.

▷그런 그가 대북정책 기조가 크게 바뀐 이명박 정부의 통일부 장관이 됐으니 소신 있는 외교관이었다면 갈등도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장관 내정 직후 “실용주의에 입각해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모범답안’을 내놨다. 3월 1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햇볕정책은 추진 방법과 속도와 폭, 국민의 공감대를 얻는 방식, 합의 도출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햇볕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국정감사 때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그에게 “영혼을 파신 것 아니냐”고 물었고 그는 화를 냈다.

▷김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이명박 정권이 의도적으로 남북관계를 파탄내고 있다는 DJ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남북관계를 사랑하고 중시해서 한 말씀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발끈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명박 정부의 통일부 장관이 맞느냐”고 추궁했다. 그러자 그는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간 적이 없다. DJ 발언이 사실이라면 유감”이라고 말을 바꿔 상황을 수습했다. 김 장관의 본심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김 장관 같은 정권불문(不問) 장수(長壽) 관료에겐 ‘영혼’이 하나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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