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자정리(會者定離). 늙고 병들면 이승을 떠나기 마련이지만 의학의 발전에 힘입어 생명은 그만큼 연장된다. 하지만 불치의 병으로 야기되는 고통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한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임박하면서 생명을 연장하려는 노력도 필사적이다. 반면에 환자의 고통은 배가된다. 언제 어떻게 어떠한 조건에서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지가 현대사회에 던져진 과제다.
넓은 의미의 안락사란 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불치 상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죽는 시기를 앞당기는 의학적인 조치를 말한다. 고통을 완화시키는 약물 투여가 생명 단축이라는 부수효과를 가져오는 간접적 안락사는 특별히 문제되지 않는다. 이것을 문제 삼는다면 치료행위 자체가 자칫 죄악시될 수 있다.
반면에 회생 가능성이 없는 질병으로 인해 빈사상태에 빠진 환자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적극적 안락사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엄격한 요건이 충족될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 뿐이다. 외국에서는 의사의 말기 암 환자에 대한 적극적 안락사 시술행위가 영상으로 공개돼 엄청난 사회적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일반적으로 존엄사(尊嚴死)로 지칭되는 소극적 안락사란 환자를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게 하기 위해 생명 연장의 적극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음을 말한다. 예컨대 수혈 인공호흡장치 생명연장주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가족의 요구에 따라 의사가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한 후 환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의사의 살인방조죄를 적용했다. 그만큼 생명 연장을 중시한 판결이다.
이번에 비록 1심 법원이지만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한 판결은 새로운 진전이다. 그동안 안락사에 대해 법적인 판단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판결이라 새삼 세상의 주목을 끈다. 법원은 ‘행복하게 살 권리’만큼 ‘품위 있게 죽을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한다.
인위적 생명 단축 행위인 적극적 안락사에 비하면 소극적 안락사는 생명 연장을 위한 인위적인 수단을 취하지 않는 데 불과하므로 조건이 충족된다면 널리 인정해야 한다. 법원이 제시한 조건에서 회복 가능성 희박과 기대여명 3, 4개월은 의학적 판단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환자가 평소에 한 의사 표시는 환자 자신의 몫이다. 죽음의 품위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서 비롯된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법조계 의료계 종교계가 다 같이 수긍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사안의 특성상 일정한 기준을 제시한 연후에 개별 사안마다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해야 한다. 가칭 존엄사위원회를 통해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널리 수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한국 사회도 부모자식이 동거하지 않는 가구가 절대다수다. 갈수록 전통적인 가(家) 중심의 공동체는 해체되고 개인주의와 물신주의가 팽배한다. 이런 각박한 세태에 존엄사의 허용이 자칫 가족의 생명을 방기하는 패륜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존엄사 판결이 언론의 톱뉴스를 장식한 이면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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