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제1야당 대표가 불참하면 금융위기와 예산안 처리 등에 대한 초당적 협력문제를 논의한다는 게 무의미하다”고 설명했다. 말은 맞지만, 그렇다면 애초 정 대표가 참석하도록 적극적으로 설득했어야 하지 않을까. 막판에 이 총재의 말에 따라 허겁지겁 정 대표의 참석을 간청했으니 한심하다. 더욱이 정 대표는 요즘 당의 노선문제에 휘말려 정신을 못 차리는 상황이다. 더욱이 이날 오찬과는 별도로 청와대가 선진당의 요청에 따라 이 대통령과 이 총재의 단독 회동을 추진 중이었으니 민주당의 심사가 좋을 리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 회동 연기에는 정치적 함의가 작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산안과 주요 민생법안의 국회 통과에는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인데 정 대표가 불참한다면 자칫 상황만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 같다. 민주당을 우회적으로 압박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이 계속 거부할 경우 민생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게 돼 청와대로선 손해 볼 게 없다는 판단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정 대표가 청와대 오찬에 가기에는 당내 사정이 너무 복잡하다.
▷민주당 비주류는 그제 ‘민주연대’를 발족하고 ‘야당 내 야당’을 기치로 내걸었다. 당내 노선투쟁을 선포하는 신호탄이다. ‘야성(野性) 회복’ ‘선명 야당’ ‘반(反)독재투쟁’ 같은 흘러간 구호들도 다시 등장했다. 정 대표의 대여(對與) 투쟁 강도도 이에 영향을 받은 듯 한나라당의 예산안 심사 강행에 상임위원회 활동 전면 거부로 맞서고 있다. 당 일각에선 “투쟁성을 높인다고 지지율이 올라가겠느냐”는 얘기도 나오지만 정 대표의 청와대 회동 참석은 물 건너간 것 같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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