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개미 모드’

  • 입력 2008년 12월 11일 03시 03분


“그들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사람을 건드리면 모두가 그 손길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베르베르 붐’을 일으킨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서 퐁텐블로 숲 땅속에 몇 달째 갇혔다가 개미의 도움으로 살아난 사람들을 보고 구조대원들이 나누는 얘기다. 햇볕도, 먹을 것도 없는 땅 속에 갇힌 사람들이 살 길은 개미처럼 되는 것뿐이었다. 전체의 생존 속에서 개인의 생존을 보장받는 개미사회의 방식을 따랐던 것이다.

▷소설 속 꾸며낸 이야기일 뿐일까. 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의 ‘개미제국의 발견’을 보면 개미는 인간사회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개미사회의 철저한 분업과 협업이 보여주는 효율성은 놀랍기만 하다. 조직을 구하기 위해 자폭하는 개미, 여왕개미를 겨냥해 역적모의를 하는 개미, 식물을 보호해주고 대가를 받는 개미 등등. 개미와 인간은 지구(地球)의 2대 지배자이지만 개미는 1억 년 이상을 살아왔다는 점에서 우리 인간이 배워야할 게 더 많을지도 모른다.

▷경기침체기를 맞아 미국인이 생활방식을 더 많이 일하고 덜 노는 ‘개미 모드’로 바꾸고 있다고 한다. 여론조사기관인 해리스인터랙티브에 따르면 미국인은 지난해에 비해 주당 노동시간은 1시간 늘고 여가시간은 4시간 줄었다. 일하지도, 놀지도 않는 3시간 동안은 컴퓨터나 휴대전화 등 무선서비스를 이용해 정보를 검색하면서 보낸다. 정보검색은 외부 레저활동에 비해 돈이 안 든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개미 모드라고 할 수 있겠다.

▷개미 모드가 어찌 미국만의 일이랴. 이달 초 한 온라인 취업사이트가 직장인 12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69%가 올 연말은 예년에 비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스트레스의 가장 큰 이유는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직장인은 시키지도 않은 야근을 자청하며 회사 눈 밖에 나지 않으려하고 주부들은 외출을 삼가고 지갑을 닫는다. 하지만 혼자서 죽어라고 일하는 것은 개미의 덕목이 아니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정작 필요한 것은 개미사회에서 보는 뛰어난 협업과 분업의 효율성일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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