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사는 “제7차 교육과정과 성취도평가가 맞지 않기 때문에 학생 학부모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었을 뿐”이라며 “파면은 생각지도 않았고 젊은 교사가 다친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 시험을 볼지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한 것”이라며 “교육당국은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하라고 하면서 평가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것이 그렇게 큰 죄냐”고 묻기도 했다.
또 해임 징계를 받은 한 여교사는 다음 아고라에 학부모에게 보내는 글을 남겼지만 반성의 기미는 없는 듯하다.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내게 이 직업을 주셨음을 하루하루 감사하던 나날이었습니다. 제가 시대를 너무 우습게 봤나 봅니다. 양심 있는 사람들이 살기엔 너무나도 잔인하고 폭력적이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공무원으로서 성실하게, 명령에 복종하며 바닥을 기기보다는 교육자로서 당당하게, 양심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경제난에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교직에서 쫓겨나게 된 개인 사정은 안타까울 수도 있지만 전교조의 정치 논리에 조합원만 피해를 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전교조는 8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대의원대회에서 학업성취도평가를 반대하되 시험 거부 등 극단적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 여론이 따가운 데다 거부 투쟁에 참여한 교사들이 불이익을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 두 계파가 조직을 장악하고 대립하는 구조다. 같은 전교조라지만 상대 계파를 인정하지 않고 ‘권력’을 잡기 위해 싸운다. “차라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하고 친하게 지내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PD계파의 전교조 서울지부는 대의원대회 결의를 무시하고 체험학습 떠나기, 친구와 함께 의논하며 문제 풀기 등 독자적인 투쟁을 강행했다.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선명성을 부각해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었다.
전교조 내부에서는 “서울지부가 강경 투쟁만 고집하다 일반 조합원만 피해를 보게 됐다. 본부가 징계 교사 지원 투쟁에 나서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징계 소식이 알려지자 처벌 수위가 지나치다며 상경 투쟁을 하자는 격앙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조합원이 시험 거부에 냉소적인데 일부 지도부가 강경투쟁만 고집했다. 시험 거부를 주도한 ‘몸통’은 따로 있는데 ‘깃털’만 다쳤다”는 비판도 많다.
전교조가 자신들의 교육철학만 옳다며 어린 학생과 학부모에게 시험 거부를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독선이다. 학부모가 바라는 것은 질 높은 교육과 친절한 교육 서비스이지 이념 논쟁에는 관심이 없다.
전교조는 11일 NL파의 정진후 후보를 차기 위원장으로 뽑았다. 시도지부장도 PD가 5명, NL이 11명 당선돼 갈등의 소지가 있다. 새 위원장은 학부모가 전교조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냉철하게 따져보고 전교조를 이끌어주길 바란다. 또다시 구태의연한 정치 투쟁만 일삼는다면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이인철 교육생활부장 in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