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일본 자동차 이야기다. 지난 주말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대규모 자동차 시위가 일어났다.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 등 대도시에 모인 수천 명의 차량 운전자들과 상인들은 정부의 수입 중고차 관세 인상에 항의하며 도로를 점거하고 경적을 울려댔다.
이 지역에서 수입하는 중고차의 90%는 일제이기 때문에 이날 시위는 일제 자동차 지키기 운동으로 봐도 무방하다. 중고차 관세가 최고 30% 오르면 이 시장에서 일하는 30만 명의 주민 생계가 위협받는다는 것이 시위대의 주장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내놓은 수입 중고차 관세 인상 방침은 러시아 국내 자동차산업을 보호하자는 애국주의 법안이었지만 2000년 이래 안정을 구가해온 러시아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주민 저항을 불러온 것이다.
정부 방침과 극동 주민들의 충돌은 러시아 내부에서 해결할 문제다. 한국이 이번 사태에서 배워야 할 점은 이 지역에 ‘일제차 중독 현상’을 낳은 일본의 시장 공략 방식이다.
기자가 2004년 11월 러시아 극동을 취재할 때만 해도 이 지역의 중고차 시장은 한글 안내문과 광고판을 떼지 않은 한국 자동차가 점유율 1위였다. 일본 자동차는 길거리에서 달리는 자동차 10대 중 1대꼴이었다.
그러던 일본 자동차가 4년 만에 러시아 극동을 뒤덮은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한 일본 기자는 “일본 자동차가 러시아 시장에서 정-경-상(政經商) 일체를 이룬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계는 러시아통으로 알려진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를 내세워 러시아 자동차시장 공략에 앞장섰다. 그가 2005년 6월과 지난해 12월 푸틴 당시 대통령을 초청해 도요타자동차 러시아 현지공장 기공식과 준공식에 참석시킨 일은 러시아 재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지도가 70%를 넘던 푸틴 대통령의 행사 참석은 일본 브랜드를 끌어올리는 기폭제였다.
일본 중고차가 러시아 시장에 팔리면 도요타와 같은 완성차 업체들은 폐차에 따른 환경 부담금 비용을 줄이면서 완성차 판로를 넓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다. 완성차 회사가 현지 중고차 판매상에게 운반비 지원, 공식 딜러 인정 등 많은 인센티브를 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 브랜드 중독 현상을 만들어낸 일본의 다각적 시장 공략 못지않게 배워야 할 것은 중국의 에너지 협상 전략이다. 에너지가 부족한 중국은 유가가 치솟을 때면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수세에 몰렸다.
하지만 중국이 올해 10월 러시아에서 3억 t의 석유를 헐값에 도입하기로 합의한 이후 러시아 석유 수출업체들은 중국의 협상 전략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에서 석유를 도입하는 대가로 러시아에 25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고, 이 차관에 대한 이자율을 올리며 외국 자금이 절실한 러시아에 계속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을(乙)에 머물기 마련인 에너지 수입국이 에너지 수출국을 상대로 갑(甲)의 위치에서 협상을 벌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에너지 협상 테이블에서 빈번히 러시아 측에 끌려 다닌 한국 정부와 민간 업체가 서로 따로 뛰다가 시장 점유율을 잃은 한국 자동차 회사들은 이처럼 다른 나라의 전략을 보며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정위용 모스크바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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