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한 수 배워 갔지만 위상은 역전되어 있다. 올해 영국 더 타임스의 세계 대학평가에서 홍콩과기대는 39위에 올랐다. KAIST는 95위다. 홍콩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받고 있으나 돈만으로 세계적 대학이 된 건 아니다. 전공(專攻)이기주의에 급급한 우리 대학들과 달리 분과 학문의 벽을 과감하게 허물어 세계 흐름에 합류했다. 산업현장이 원하는 교육에 앞장섰다. 대학의 비전과 리더십, 그리고 든든한 후원이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KAIST 서남표 총장은 얼마 전 “KAIST가 세계적 대학이 되려면 일정 규모를 갖춰야 하고 학부 정원을 현재의 700명에서 1000명까지는 늘려야 한다”며 “그러나 교육당국에 증원을 요청하면 ‘어떻게 KAIST에만 특혜를 주느냐’고 반대한다”고 전했다. KAIST는 외국 대학과 경쟁하는 데 써야 할 힘을 정부 규제 및 평등 논리 같은 내부의 적과 씨름하며 소진하는 처지다. 서울대 역시 세계적 대학이 될 수 있는 유력 후보지만 자율성 확보를 위한 당면 과제인 법인화 문제만 해도 다른 국립대들이 더 반대한다. 서울대가 먼저 법인화를 하면 서울대는 좋아지지만 다른 국립대는 입지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10월 서울대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은 “서울대가 법인화를 한다고 하는데 다른 국립대의 아픔을 한번 생각해 봤느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우리가 세계적 대학을 몇 개라도 갖게 되면 다른 대학을 자극해 경쟁력이 같이 높아질 것이다. 가능성 있는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집중 지원이 필요하다. 대학 구성원들은 하버드대 같은 세계 일류 대학과 우리는 여건이 다르다는 식으로 자기방어에만 급급해선 안 된다. 홍콩과기대의 사례는 하기에 따라선 단기간에 세계적인 대학을 키울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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