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남편이 해고되지 않기를 빌 뿐이다. 중소기업 부장인데 집에 와서도 매일 부도 얘기만 한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40대 주부) “서울대 법대 나온 친구가 여러 군데 취직에 실패하고 7급 공무원시험 본다고 해서 충격받았다.”(서울대 인문대 대학원생) “새해엔 청년실업자가 외환위기 이래 최대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일자리 몇만 개 만들겠다고 해봐야 아무도 안 믿는다.”(30대 창업활동가) “매출이 무섭게 떨어진다. 일주일이 다르다.”(최우량 대기업 경영인) “손님들이 혼자 1인분 먹던 순대를 둘이서 1인분 달라고 한다.”(경기 안산시 포장마차 주인) “이곳저곳 빈 사무실이 늘어난다.”(서울 도심 한 회사 간부)
일자리 불안의 뒷면은 기업 경영난이다. 대학원생은 “경쟁이 너무 심하다 보니 학생들끼리 취업정보도 서로 교환하지 않는다”고 했다. 청년들이 몇 년씩 일 없이 녹슬면 사회 활력은 어디서 나오나. 수출이건 내수건 매출이 격감하면 결국 일자리 위기다. ‘순대 구매력’마저 반 토막 났다면 서민의 내핍도 한계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비어 가는 사무실에서 사라지는 것도 일자리다.
민주당 MB악법 주장의 허구
종업원 한두 명 고용한 식당이나 가게 250만 개의 사정은 어떤가. 구조조정에 밀려나는 대기업 명퇴자들이야 그래도 1, 2년은 버티겠지만 영세 자영업주와 그에 딸린 종사자들은 몇백만 원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중산층 이상에선 지난해 펀드로 30∼40% 손해보고 집값이 억, 억 하며 떨어져 가슴앓이한다. 내 집 있고 펀드까지 들 만한데 웬 엄살이냐 할지 몰라도 이런 상태에선 아무래도 지갑 열 기분이 안 난다. 펀드나 집 못 가진 이들이 고소해하기엔, 소비 부진의 여파가 결국 저소득층부터 때린다.
노무현 정부가 부자를 정밀 타격해 서민 받든다며 1가구 1주택자까지도 수백만, 수천만 원의 종부세를 물릴 때 ‘팍팍 매겨버려’ 하며 신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세금이 박수친 사람들의 생계에 도움을 줬을까. 오히려 종부세 납부자들이 세금 무서워 소비지출을 줄이는 바람에 경기(景氣)가 더 나빠지고 일자리가 더 줄었을지 모른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대기업 투자를 촉진할 만한 법은 죄다 ‘MB(이명박) 악법’이라고 못질한다. 그렇잖아도 글로벌 경기침체로 투자의 씨가 마르는 판에, 투자 여력이 있는 대기업만이라도 투자하면 경제가 조금은 나아지고 일자리 몇 개라도 생길 텐데 어찌 저렇게도 상투적인 논리일까.
은행들은 자기자본비율을 못 지켜 딴 은행에 합병될까 봐 중소기업과 개인에 대한 대출을 꺼리고 있다. 이 바람에 흑자부도 위기에 내몰리는 기업도 적지 않다. 가계발(發) 금융부실의 우려도 있다. 은행들에 자본 확충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해법이다. 은행법이 개정되면 국민 부담으로 증자를 하지 않아도 은행 자본 확충이 쉬워진다. 산업자본(기업)이 보유할 수 있는 은행 주식 한도를 지금의 4%에서 10%로 넓혀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런 은행법 개정안을 ‘재벌은행법’이라고 낙인찍고 반대한다.
민주당은 중소기업과 개인들의 자금줄이 끊기건 말건, 결국 혈세인 공적(公的) 자금을 은행에 집어넣어야 할 상황이 오건 말건, 외국 투기자본이 우리 은행들을 사냥감으로 삼건 말건 ‘우리는 재벌 편이 아니다’는 깃발만 펄럭인다. ‘재벌 견제’가 자신들의 정체성(正體性)이라고 자랑하는 민주당 때문에 정작 피해를 보는 쪽은 중소기업과 약자(弱者)들이다.
남 못된다고 나 잘되진 않는다
우리나라는 수출에 목을 걸고 있다. 그래서 좌파임을 숨기지 않던 노무현 대통령조차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진두지휘했다. 더구나 예상을 뛰어넘는 세계적 경기 냉각과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 조짐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한미 FTA는 절실하다. 그런데 민주당은 자신들이 집권당 시절에 체결한 이 FTA의 국회 상정 원천무효 투쟁을 벌이고 있다. 희한하게도 민주당과 반미(反美)세력은 한-유럽연합(EU) FTA 협상의 급진전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새해 민생경제에 희망의 싹이라도 틔우려면 정책에 대한 엉터리 주장부터 무력화(無力化)시켜야 할 것 같다. 일부 국민이 좌파적 미신(迷信)에서도 깨어났으면 싶다. 경제에서 남 못되게 한다고 내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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