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불황형 흑자

  • 입력 2009년 1월 5일 02시 57분


경기(景氣)가 어려울 때 많은 기업은 긴축경영을 선택한다. 불황에 따른 매출과 이익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각종 비용을 더 줄여 장부상 흑자를 내는 전략이다. 호황 때와 비교하면 흑자 규모가 같더라도 임직원이나 거래처의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퇴출되거나 거래가 끊어지는 것을 피하기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때도 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해 연간 130억 달러의 적자를 보인 무역수지가 올해 119억 달러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세계경제의 동반 위축으로 수출이 부진하지만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하락, 내수 부진에 따른 수입수요 격감 덕에 생기는 ‘불황형 흑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뺄셈형 흑자라도 적자보다야 낫지만 전체 국민경제나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민생의 고통을 동반하는 흑자다.

▷그렇다고 너무 평가절하할 필요도 없다. 당분간 글로벌 경기침체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그나마 무역수지 및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진다면 외환시장 불안 등 우리 경제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데 도움이 된다. 외환보유액을 조금씩이라도 늘려감으로써 원화가치 안정과 외국자본의 ‘셀 코리아’ 심리 억제, 국내 기업들의 ‘돈맥경화’ 완화를 기대할 수 있다. 당장 실물(實物)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크진 않겠지만 외환 및 자금시장의 불안이 수그러든다면 결국 실물경제 회복에도 기여할 것이다. 지난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금융위기에 휩싸였을 때 미국 경제계에서 유행한 말처럼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급할 때는 ‘현금이 왕(Cash is king)’이다.

▷무역수지 흑자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수출이다. 우리나라는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다. 수출은 우리 경제의 희망이자 활로다. 시커먼 먹구름에 덮여 있는 수출 전선(戰線)의 현실을 가볍게 볼 수는 없지만 폐허에서 경제를 일으킨 한국인 특유의 도전정신으로 해외시장 개척과 경쟁력 있는 제품 개발에 나선다면 새로운 돌파구도 열 수 있다. 불황형 흑자에서 호황형 흑자 구조로 되돌려 놓기 위해 기업과 정부는 수출촉진에 총력전을 펴고 국민은 이들을 전폭적으로 응원할 때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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