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한국어 교수법 가르치는 첫 외국인 로버트 파우저 교수

  • 입력 2009년 1월 14일 03시 02분


지난해 2학기부터 한국 학생들에게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강의하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경제 기자
지난해 2학기부터 한국 학생들에게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강의하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경제 기자
《한국 학생들에게 영어와 한국어로 ‘한국어 가르치는 법’을 강의하는 미국인 교수가 있다. 지난해 2학기 서울대 국어교육과에 임용된 로버트 파우저(48) 교수다. 국내 대학의 국어교육과에서 한국어 교수법을 강의하는 교수로 외국인을 채용하기로는 파우저 교수가 최초다. 그가 지난 학기에 진행한 과목은 학부 강의 ‘국어교육 연습’과 대학원 강의 ‘한국어교육 실습’. 그는 영어로 진행한 ‘국어교육 연습’에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강의했고, ‘한국어교육 실습’ 시간에는 서울대 언어교육원에서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현장을 학생들과 함께 참관하고 토론했다.》

“한류-기업진출 활용, 한국어의 세계화를”

그는 9일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최근 외국인 이주 노동자, 다문화 가정 자녀 등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 하는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 국어교육과가 ‘외국인에게 한국어 가르치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수를 뽑은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어를 배워 본 데다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일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자신의 경험을 평가한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는 “그런 면에서 볼 때 서울대 국어교육과가 매우 개방적이고 세계화됐다는 느낌을 받았고, 연구 풍토나 학생들과의 소통 면에서도 낫다고 판단해 지원했다”고 밝혔다.

파우저 교수는 “일본에선 한류 덕분에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한국 기업들이 진출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면서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한국어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을 공부한 것을 계기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아시아 국가의 언어를 하나 더 익히고 싶어 그는 1983년 대학을 마친 뒤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1년간 한국어를 배웠다. 미국으로 돌아가 외국어교육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다시 한국에 와서 1987년부터 6년 동안 고려대, KAIST 등에서 영어 강사를 지냈다.

이어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에서 응용언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95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일본 구마모토가쿠엔대, 교토대, 가고시마대에서 전임 교수로 교양 영어와 영어교수법을 가르쳤다. 가고시마대에 있을 때는 ‘교양 한국어’ 과정을 만들어 영어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파우저 교수는 “일본 대학에 오래 있으면서 동양의 조직 문화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한국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면서 “나서지 않고 배운다는 자세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동료 교수들은 ‘박우주’라는 한국식 이름을 지어줬고, 학생들은 외국인 교수의 한국어 교수법 수업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는 한 학기 동안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1980년대의 한국 대학생들과 현재 대학생들의 태도에서 커다란 차이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때 학생들은 정치와 사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죠. 지금 학생들은 현실적입니다. 인생을 설계하고 개척해 나가는 모습에선 옛 학생들보다 자신감이 더 커 보입니다. 달라지지 않은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윗사람에 대한 예절입니다.”

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의 차이점을 묻자 그는 “한국 학생들이 훨씬 밝고, 수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학생들은 동료나 교수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데 반해 일본 학생들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면서 “협력하는 것은 한국 학생들이 낫지만 연구 주제에 매달려 끝까지 파고드는 점은 일본 학생들이 앞선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대학의 연구 풍토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밝혔다. 그는 “한국 대학들이 세계 상위권 대학으로 발돋움하려면 교수들이 글로벌 차원의 경쟁심리를 가져야 한다”면서 “언어의 장벽은 어떤 식으로든 극복할 수 있으므로 더 많은 논문을 세계 주요 학술지에 발표하겠다는 욕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1997년 ‘한국 문학의 이해’라는 책을 영어로 번역한 그는 앞으로도 한국 책을 영어로 번역하는 데 심혈을 기울일 계획이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를 개발하는 것도 목표 중 하나. 그는 “입 모양을 보여주며 한국어 발음을 가르치는 교재조차 변변히 없다”면서 “동영상을 활용한 교재를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함으로써 한국어 학습 자료를 세계에 널리 퍼뜨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말하고 쓰는 데 능통하고, 독일어와 스페인어의 경우 기본회화를 구사할 수 있으며, 읽는 데 지장이 없는 프랑스어 실력을 갖췄다. 외국어 습득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는 ‘쓰기’를 강조했다. “쓰는 연습을 통해 표현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말하기로 연결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어는 ‘쓰기’ 쉬운 언어여서 외국인들이 배우기에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파우저 교수는 한국의 외국어 교육 현실에 대해 “영어도 중요하지만 같은 한자문화권이라서 배우는 데 유리한 중국어나 일본어 교육에 중점을 두는 게 경제성, 효율성 차원에서 낫다”며 “초중고 교육 과정에서 한자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파우저 교수:

△1961년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출생 △1983년 미시간대 일어일문학과 졸업 △1987년 KAIST 영어강사

△1988∼1992년 고려대 영어강사

△2001년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에서 응용언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 취득

△1995∼2008년 8월 일본 구마모토가쿠엔대, 교토대, 가고시마대에서 강의

△2008년 9월∼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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