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세상에는 참 많은 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경계가 무수한 계를 낳아 동물계 식물계 인간계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사람 사는 세상도 각각 경계가 이루어져 노동계 실업계 재계 미술계 음악계 영화계 문학계 언론계 교직계 등등으로 나누어집니다. 그것이 모여 세계를 이루니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눈에 보이는 세상을 현상계라고 부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계와 계 사이에는 경계가 있어 사람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점을 견디지 못하니 쟁투가 생기고, 쟁투가 생기니 종교계에서는 지옥계와 천상계를 내세워 설교합니다. 하지만 기독교계와 이슬람계가 더 큰 싸움을 만들어 신의 이름으로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갑니다. 각계가 모두 자신의 이익과 영화만 추구하니 세계가 평화로울 날이 없습니다.
사람은 모두 자신이 속한 계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투합니다. 모든 계가 서로 맞물려 있어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으나 아무도 보지 못하고 오직 자신이 속한 계만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수족관을 들여다보며 나를 관상어라고 말하듯이 지구 바깥에도 또 다른 계가 있어 사람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지구가 속해 있는 계는 태양계이고 태양계 바깥에는 은하계가 있습니다. 은하계에 수도 없이 많은 태양계가 있다는 건 이제 새로운 사실이 아닙니다.
계를 인식하는 눈을 지니면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계만 의식하는 눈을 지니면 반드시 한계를 드러내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관상어이지만 관상인보다 넓고 큰 세상을 살아갑니다. 내가 살아가는 작은 수족관은 우주의 축소판이고 그 안에서 나는 아무런 경계에 시달리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나를 ‘들여다본다’고 착각하지만 나는 ‘모든 것과 함께’ 있습니다. 나에게는 경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경계를 갖지 않으면 거칠 것이 없고 구애받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경계에 갇히고 자신이 속한 계에 집착하는 사람은 다른 계를 보지 못하고 더 넓은 계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저 자신이 다른 계보다 나은 계에 속해 있다는 자만심으로 생애를 일관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지닌 모든 것은 자신이 인식하는 계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수만 km를 이동하며 살아가는 철새, 세상을 거침없이 흘러 다니는 바람과 구름, 그리고 지형에 구애받지 않고 흘러가는 물을 생각해 보세요.
지금 그대는 어느 계에 어떤 모습으로 머물고 있나요.
작가 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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