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은 신입생을 뽑을 때 출신 고교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고교마다 지역적 특성이 있고 교육 여건이 다르다. 학력(學力) 차도 있다. 대학은 이런 고교별 특성을 반영해 학생을 뽑기를 원한다. 대학이 갖고 있는 학생 선발권의 일부라고 본다. 그러나 교육당국이 사용한 등급제라는 표현은 고교생들 사이에서 ‘대학이 우리를 쇠고기 취급한다’는 싸늘한 반응을 불렀다. 쇠고기 품질에 따라 등급을 나누듯 학생을 차별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제도의 옳고 그름이 내용보다 용어로 판가름 나는 사례는 교육 분야에만도 더 많이 있다. ‘일제고사’도 그렇다. 적지 않은 40, 50대는 학창시절 전교생을 같은 날 시험 보게 해 꼴찌까지 순위를 공개했던 일제고사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 요즘 실시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내용과 취지가 전혀 다른데도 이른바 진보라는 좌파세력은 당시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일제고사’라는 꼬리표를 붙여 비판에 열을 올린다.
▷올해 중고교에 도입되는 ‘수준별 이동수업’도 비슷한 처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동수업은 몇몇 주요과목에서 학생들이 각자의 실력에 따라 상급반, 중급반, 하급반 등 서로 다른 교실에서 공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것을 ‘우열반’으로 몰아 공격하는 행태는 전부터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영어는 잘하고 수학은 못하면 영어 수업은 상급반에서, 수학은 중·하급반에서 배우는 게 학생 개개인을 위해 좋다. 전체 학생을 둘로 나눴던 우열반과는 다르다. 성적이 좋은 학생보다 그렇지 못한 학생 수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교육현장에서 차별을 공격하는 선동은 쉽게 먹힌다. 현실이 이러니 교육당국도 ‘용어 전쟁’에서 밀리지 않아야 정책을 안착시킬 수 있다. 최소한 객관적 용어가 자리 잡도록 각별히 대처할 일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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