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영균]크루그먼 vs 맨큐

  • 입력 2009년 1월 30일 03시 01분


미국 경제학계에는 현실 참여의 전통이 강하다. 경제가 난관에 부닥치면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처방전을 낸다. 이번 위기에도 수많은 경제학자가 나섰다. 그중에서도 노벨 경제학상(2008년)을 받은 폴 크루그먼(프린스턴대)과 경제학 교과서 ‘맨큐의 경제학’으로 유명한 그레고리 맨큐(하버드대)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두 사람 다 석학인 데다 지지하는 대통령과 정책도 달라 한층 흥미롭다.

▷크루그먼은 ‘민주당 편향(偏向)’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그는 버락 오바마의 경제팀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글을 쓰면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경제팀을 향해 ‘잘 가라, 졸병들아’라는 원색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그가 부시팀을 겨냥해 “균형경제이론만을 공부한 학자들이 이제야 매도프(월가의 펀드 사기 혐의자)에게 투자한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비웃었다. 그러자 맨큐는 즉각 “웃기지 말라”며 균형이론 대가들의 책을 다시 잘 읽어보라고 쏘아붙였다.

▷1970년대 중반 베트남전쟁에서 패한 미국이 불황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릴 때도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시카고에서 대대적인 규제 완화를 다짐하는 연설을 했다. 포드는 “미국 기업인들에게 채웠던 족쇄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시카고는 소위 시카고학파의 본거지로 시카고학파는 그때까지만 해도 주류였던 케인스학파와는 달리 규제완화 이론을 신봉했다. 이들은 시장과 가격이 최상의 자원분배자라고 여겼다. 레이건시대의 개막과 함께 시카고학파는 주류 경제학으로 자리를 잡는다.

▷크루그먼과 맨큐 둘 다 스스로 케인스학파라고 주장하지만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 해법을 놓고서는 확연히 갈라선다. 크루그먼은 “과감하게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맨큐는 “재정적자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없다”며 금리인하론을 편다. 어떤 이론이 어느 시대에나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한 이론이 10년 정도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학계는 치열하게 현상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놓고, 논쟁에 참여하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쉽다. 경제학자들의 침묵이 ‘미네르바 신드롬’을 키웠는지도 모른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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