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이 커다란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들었습니다. 지난 세월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지 않아도 알고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습니다. 그처럼 여리고 섬세하던 감성의 소유자가 저렇게 황량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길게 말할 건더기가 없었습니다. 사막과 감성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기에 사람이 저토록 달라질 수 있는 걸까요.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우리는 감성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이 돈도 되지 않고 명예도 되지 않고 권력도 되지 않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살이와 사람다움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가꾸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혼에 작은 정원 하나를 가꾸는 일과 감성을 가꾸는 일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하찮은 일 같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그것은 천차만별한 결과를 불러옵니다.
10대에는 아이들 모두가 감성 덩어리라 차이가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로 진입하는 20대부터 감성은 알게 모르게 휘발되기 시작합니다. 사회성과 감성의 조화를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으니 30대, 40대쯤 되면 엄청난 차이가 드러납니다. 감성의 정원이 사막화되면 부끄러움을 상실하게 되고 뻔뻔스러움을 투구처럼 상용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점은 삶의 창의력을 상실해 생산보다 쟁투나 치부(致富)에 혈안이 된다는 겁니다. 감성의 정원이 황폐해지니 자연히 삶의 향기를 잃는 격입니다.
평생 감성을 잘 유지하고 산 사람에게서는 인생의 향기가 우러납니다. 감성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고, 돈 한 푼 안 들이고 얻을 수 있으니 사람의 가치를 창출하는 데 그만한 게 달리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인이 감성을 자극하는 데 좋은 예술작품을 가까이하며 살라고 권합니다. 눈에 보이는 재물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재물을 지닌 사람을 만나보면 그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로 깨치게 될 것입니다.
“사막이 사막이라는 걸 알면 다시 초원을 복원할 수 있다네. 사막인데도 사막인 줄 모른다는 것, 그것이 가장 무서운 사막이 아니겠는가.” 사막이 푸른 초원으로 복원되기를 빌며 나는 죽마고우의 손을 잡았습니다. 노을이 아름다운 시간, 따뜻한 감성이 두 사람 사이로 전류처럼 흘렀습니다.
작가 박상우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