進路고민 없었던 젊은이의 ‘늦고통’
노래 후반부는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에게 보내는 답장이다. ‘나도 상처받고 잠 못 이룰 때가 많아. 세상의 바다는 거칠거든.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길이 보일 거야. 자신의 소리를 믿고 나아가도록 해. 행운을 빌어.’ 일본 NHK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어린 학생들이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장면을 방영하기도 했다. 어느 사회든 진로 선택은 인생 최대의 고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일본에서는 중학교 때 벌써 그 고민이 시작된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한국 청소년은 훨씬 늦은 고등학교 3학년, 더 늦으면 대학 졸업 단계에서 이런 고민을 한다. 일단 대학까지는 모두 같이 가고 보는 것이다. 취업을 위한 실업계 고교가 있지만 2008학년도 실업고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73%에 달했다. 전체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세계 1위인 84%로 집계된다.
대학에서 공부할 전공을 정할 때도 부모들이 대신 판단하는 경우가 흔하다. 학생들은 평소 진로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의 희망이 있더라도 그렇게 치밀하고 구체적으로 목표를 설계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들 명문대학 혹은 의대 등 남들이 좋다는 학과에 진학하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고, 성적이 모자라면 하는 수 없이 학교와 학과를 바꾼다. 금전만능의 사회 풍조도 여기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런 ‘개념 없는’ 진로 선택은 그에 동반되는 고민과 고통을 잠시 유예할 뿐이다. 고통은 미룰수록 커지고 길은 어렵게 꼬이게 된다.
대학 졸업을 앞두면 마음이 급해진다. 대학에 온 이상 학력에 어울리는 직업을 바라지만 그런 일자리를 얻는 것은 처음부터 쉽지 않다. 대학 문을 나서는 젊은이는 해마다 50만 명이 넘는다. 인구통계를 보면 이 숫자는 당분간 줄지 않는다. 고학력자들이 선호하는 국내 상위직종에서 모두를 수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취업 경쟁은 어느새 전쟁이 되었고 개인의 적성과 희망은 또 한번 진로 선택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경제가 좋아지더라도 청년층의 일자리 부족 현상은 구조적으로 개선되기 힘들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투표한 40, 50대 유권자들은 현 정부가 청년실업만큼은 해결해 주길 기대했다. 취직 못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속으로 까맣게 타들어간다. 그러나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2%로 전망했다. 일자리는 20만 개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대졸 예정자에겐 구직(求職)을 거의 포기해야 하는 ‘잔혹사’가 눈앞에 닥쳐 있다. 일부 세력은 이 틈에 청년실업 문제를 의도적으로 부각해 사회 갈등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일자리 제공 장기처방에도 全力을
당사자의 고통은 얼마나 클까. 이 사회로부터 영원히 지워져 버리는 듯한 절망감에 빠져 있을 것이다. 한참 반짝이는 두뇌를 지닌 이들을 활용하지 못하는 건 손실이고 비극이다. 정부는 명운을 걸고 청년실업 해소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단기 처방뿐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장기 치료에도 나서야 한다. 머리 좋은 학생이 모두 의사 변호사가 되려는 것은 ‘꿈이 없는 사회’라는 증거다. 대대로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의무였다. 지금부터라도 일찍 진로를 고민하게 해주고, 꿈을 이루기 위한 환경을 만드는 데 기성세대가 힘을 모아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