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인간 도살자의 눈물

  • 입력 2009년 2월 22일 19시 56분


캄보디아에서는 크메르 루주 치하에서 강제수용소장을 지낸 두치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있다. 1만5000명을 사법 절차도 없이 처형한 두치에게 국제적으로 공소시효가 없는 ‘반인도적 범죄(Crime against humanity)’ 혐의가 적용됐다. 유엔이 지원하는 이 법정에서 사형 판결은 없다. 유엔은 사형 유예 결의안을 2007년 12월 채택한 바 있다.

두치 수용소의 희생자들은 체포된 후 가족을 단 한 차례도 만나보지 못하고 잔인하게 학살당했지만, 두치는 감방 음식 TV시청 면회 등에서 국제기준에 따른 권리를 누리고 있다. 얼마 전 사법당국이 프놈펜 교외에 있는 두치 수용소 자리로 그를 데리고 갔다. 그는 여기서 눈물을 떨어뜨리며 참회의 말을 했다. “여러분의 용서를 구합니다. 여러분이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용서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내게 남겨주십시오.”

도살자(屠殺者)는 극형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교화된 것일까? 크메르 루주 치하에서 희생된 100만 명이 재판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도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사형 면하는 1만5000명 학살자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범죄 행각이 속속 드러나면서 사형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흉악범에 대한 사형 집행의 재개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와 달리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은 “사형 집행 재개는 인권 후진국으로 후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환 추기경 회고록(2004년)에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강도살인범이 교수대 앞에서 신부 시절의 추기경에게 세례를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체중이 무거운 사형수가 교수대에 매달린 잠시 후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낡은 교수대가 사형 집행 도중 부러져 사형수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교도관들이 사형대를 급히 수리하고 나서 다시 사형 집행을 했다.

김 추기경은 두 번 사형 집행을 당하는 젊은이의 마지막을 지켜본 충격과 애처로운 마음을 기술하면서도 사형제도의 찬반에 대해서는 회고록에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로마가톨릭의 공식 견해는 사형 반대다. 김 추기경도 2001년 국회를 방문해 “사랑으로 사형제를 폐지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형 집행이 중지된 것은 김대중(DJ) 정부 때부터였다. 사형수로서의 개인적 체험이 영향을 미쳤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DJ를 처형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신군부는 동아일보에 DJ의 사형 집행을 지지하는 모 법대 교수의 원고를 게재하라고 압박했다. 고 신용순 편집국장은 계엄사령부의 검열을 받아 신문을 제작하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정치인을 사형시키라는 글을 실을 수는 없다”고 버텨 원고를 끝내 싣지 않았다.

전 씨는 후일 “이승만 대통령은 죽산 조봉암을 처형했지만 나는 DJ를 살려주었다”고 넓은 도량을 과시하듯 말했다. 죽산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진보당 사건은 조작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중앙정보부의 고문수사를 통해 민청학련과 엮인 인혁당 관련자 8명은 1975년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이 내려진 지 18시간 만에 교수형을 당했다. 이들은 32년이 흐른 2007년에야 비로소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재심 판결이 생명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정치범이나 양심범을 처형하는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두치 같은 반인도적 범죄자나 다수의 인명을 살상한 흉악범의 인권을 정치범이나 양심범과 동일선상에 놓고 논할 수는 없다. 2008년 하토야마 구니오(鳩山邦夫) 일본 법무장관은 ‘사신(死神)’이란 말을 들으면서도 흉악범 13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사형집행은 예방효과 있다”

계량경제학자들의 연구결과는 사형 집행에 상당한 범죄예방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버펄로대 아이작 에리히 교수는 ‘미국에서 집행한 사형 1건당 대략 8건의 살인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흉악범은 사형이라는 페널티에 반응하는 것이다.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은 “장관 재직 시 힘이 약한 여성 노인 장애인 등 21명을 살해한 유영철에 대한 사형 집행을 한때 검토한 적이 있지만, 당시 정부는 사형 집행을 재개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유영철의 사형 집행이 유보되는 사이에 강호순이 등장했다. 반인도적 반인륜적 범죄자들이 극형을 피하게 되면, 같은 성향의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인센티브로 작용할 수 있다고 계량경제학자들은 말한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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