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새로 밝혀낸 증거자료들을 보면 강호순의 방화 혐의는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집 내부의 불에 탄 흔적과 불이 바닥에서 곧장 천장으로 번진 것은 휘발성 물질에 의한 화재 때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화재 당일 현장에 있던 플라스틱 용기가 사흘 뒤 사라졌고, 강호순이 화재 다음 날 방범창을 통해 현장에 몰래 들어간 사실도 밝혀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모기향에 의한 화재’라는 경찰의 3년 전 수사 결론을 뒤집었다. 화재 당시 기온이 3.7도로 쌀쌀해 사람이 안 자는 거실에 모기향을 피울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강호순이 화재 발생 5일 전에 갑자기 넷째 부인과 혼인신고를 했고 화재 직전에 2건의 보험에 가입한 것도 방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검찰은 화재 당시 ‘펑’ 소리를 들었다는 주민들의 진술도 새로 확보해 휘발성 물질에 의한 방화를 뒷받침했다. 경찰이 폐쇄회로(CC)TV를 판독해 강호순을 검거한 것은 과학수사의 개가라 할 만하지만 보험금을 노린 살인혐의에 대해서는 어쩌면 수사가 이렇게 허술하게 진행됐는지 답답한 생각이 든다. 강호순이 축사에 남겨둔 곡괭이에서도 경찰이 찾아내지 못했던 여성 2명의 유전자가 새로 검출됐다.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경찰이 화재 사건 수사를 제대로 했다면 강호순의 연쇄살인을 막을 수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지금까지 밝혀진 강호순의 연쇄살인은 방화사건 11개월 뒤인 2006년 9월 시작됐다. 경찰은 ‘완전범죄는 없다’는 사실을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확인시켜야 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경찰 수사력을 비웃으며 제2의 강호순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을지 모른다. 경찰의 존재 이유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범법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잡아내는 데 있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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