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저력 묶어내면 奇跡또 가능
5000만 국민이 끝 모를 다중(多重)위기에 갇힌 형국이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뇌관들이 연쇄 폭발할 것 같다. 국민의 존망을 걸고 국력을 총결집해 대응하고 관리해야 할 상황이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고 위기의식에 질식할 건 없다. 우리 모두가 하기에 따라선 세계가 위기의 터널을 통과할 때쯤, 지금보다 몇 단계 격상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지난날 멋지게 해낸 경험이 많다. 한강의 기적이 그렇고, 올림픽과 월드컵의 성공도 그렇다.
우리는 좁은 국토, 적은 인구, 빈약한 자원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작지만 강한 나라’의 잠재력을 확인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신생국가 중에 우리만큼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나라는 없다. 이 작은 코리아 기업들이 상전(商戰)에서도, 기술전쟁에서도 숱한 승리와 성공을 기록했다. 과학자들도 심심찮게 ‘세계 최초’를 과시했다. 문화 한류(韓流)와 스포츠 한국의 가능성도 보여줬다.
한국인은 손재주가 뛰어나다. 과거 근로정신이 투철했을 때는 같은 기술, 같은 재료라면 세계 최고 상품을 곧잘 만들었다. 우리는 서비스부문에도 강점이 있다. 우수학생들의 의과대학 쏠림현상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인재들이 모이는 의료분야에서 손재주는 금상첨화다. 세계적 의료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다. 정보기술(IT) 분야의 가능성도 여전하다. 교육에 대한 고정관념만 깰 수 있다면 세계적인 교육서비스 강국인들 못 될 것 없다. 이 밖에도 서비스업의 외연은 무궁무진하다.
옛날 일이지만, 집에 갑자기 손님이 오면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그냥 지폐 한 장을 쥐여준다. 손님에게 내놓을 과일이나 과자를 눈치껏 사오라는 얘기다. 어머니는 아들의 상황 판단력과 생각의 유연함을 믿었다. 요컨대 코리안은 우수하다. 이런 국민을 한 덩어리로 묶어낼 수만 있다면 그 힘은 더하기가 아니라 몇 제곱이 될 수 있다.
우리 국민성(國民性)은 과연 모래알인가. 88서울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각계 국민이 몇 년간 함께 땀 흘린 기억이 생생하다. 11년 전 외환위기 때 장롱 속의 금을 꺼내 모은 기억은 더 생생하다. 2002 월드컵 때도 우리 국민은 거대한 응원군중 속의 질서와 다이너미즘(역동성)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김수환 추기경 추모의 결집력은 바티칸을 움직였다.
그러나 과거 어느 때보다도 헤쳐 나가기 어려운 국가 복합위기 앞에서 우리 정치권과 시민운동권은 국론분열, 국민갈등, 국정표류를 부채질하고 있다. 여당부터 한나라당이 아니라 두나라당이다. 제1야당은 자신들의 집권 시절에 관철하려 했던 민주주의 절차를 지금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 때 정세균 열린우리당 대표는 “대화와 타협이 최선이지만 그렇지 않을(그게 잘 안될) 경우 다수결 원칙에 승복하는 것이 의회주의”라며 법안 직권상정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달러발(發) 세계 경제위기의 진앙(震央)인 미국은 새 지도자 버락 오바마가 선창하는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 아래 뭉치고 있다. 위기극복 방안에 대해 여야 간 이견이 있어도 충분한 토론과 민주적 의사결정 틀 속에서 행정부를 신속하게 뒷받침한다. 일본 야당 민주당은 정부가 요청한 경기진작 예산을 여당인 자민당보다 더 적극적으로 처리해 줬다.
조무래기 정치 그만 집어치우라
정치는 잠재력 있는 국민이 맘껏 뛸 수 있게 돕는 것이어야 한다. 돈이 돌게 하고, 투자를 일으키고, 일자리를 만들어 민생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 국회에 발목 잡혀 있는 법안들뿐 아니라 더 많은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서비스업과 제조업은 물론이고 농업분야까지 제대로 규제를 풀면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이 대거 생겨나고 경제 회생(回生)과 일자리 창출에 서광이 비칠 것이다.
여야는 어째서 이런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치를 하지 않고 싸움질만 하는가. 국회의원들은 자존심도 없는가. 여당이건 야당이건, 여당 안의 친이(親李)건 친박(親朴)이건 속 좁은 조무래기 정치 그만 집어치우고 대인(大人)의 정치 한번 해보라. 이 나라에 정치의 김수환은 왜 안 나오나.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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