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학생의 교수 강의 평가

  • 입력 2009년 2월 27일 02시 58분


‘75분 수업 중에 50분 동안 신변잡기와 드라마 얘기를 늘어놓은 뒤 나머지 25분 수업하는 교수’ ‘수업 중에 어디를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르는 교수’ ‘자식뻘인 어린 학생들 앞에서 부부간 잠자리가 어쩌니 저쩌니 입에 담으시는 교수’. 숭실대가 지난 3년 동안 교수와 강사들에 대한 학생들의 강의 평가 내용을 정리해 만든 책 ‘교수를 위한 학생들의 수다’에 담긴 내용이다. 숭실대가 책의 부제를 ‘기절초풍 대학 강의 실태’라고 달았을 정도로 꼴불견인 강의 행태가 공개됐다.

▷우리나라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는 절대 권한을 행사해 왔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유교문화도 영향을 미쳤지만 학생들의 장학금과 취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성적 평가 권한을 교수가 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이 교수의 강의 방식이나 내용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캠퍼스의 오랜 금기사항이었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대학들이 도입한 강의 평가제도는 불합리한 관행을 바꾸어 놓았다. 대부분의 대학에선 강의 평가 설문지에 구체적인 코멘트를 적도록 허용하고 있어 그동안 감추어졌던 다양한 실상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강의 평가 이후 낡은 강의 노트로 몇 년째 똑같은 강의를 되풀이하거나 외부 활동이나 개인 사정을 강의보다 중요시해 휴강을 밥 먹듯이 하는 ‘간 큰’ 교수들이 크게 줄었다. 교수 재임용 심사에 반영되는 강의 평가가 교수들에게 자극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지방의 H대는 강의 평가 점수가 높은 교수가 평균점수 이하인 교수를 대상으로 강의법을 가르치는 ‘티칭 클리닉’이란 교수연수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다.

▷교수들의 강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강의 평가 시기인 학기말만 되면 우울증을 앓는다는 교수와 강사들이 있다. 강의 평가의 객관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교수들도 나온다. “수업 관리를 조금만 엄격히 하고 학점이 짜지면 강의 평가 때 낮은 점수를 받기 일쑤”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의 경쟁력은 국가경쟁력으로 통한다. 아직 세계 100위권에 확실히 들어간 대학이 없는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강의 평가는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훨씬 많은 제도라 하겠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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