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는 1997년에는 “어떤 행위를 범죄로 하고 어떻게 처벌할지는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결정사항이고 전과자의 양산을 막고 교통사고 분규의 신속한 해결을 기한다는 입법 목적이 인정된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 헌재는 “피해자의 재판 절차 진술권을 보장해야 함에도 무조건 (가해자가) 면책되게 한 것은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에 어긋난다”며 12년 전 결정을 뒤집었다. 재판관의 인적 구성이 달라졌고, 과거와 달리 대부분의 운전자가 종합보험에 가입한다는 점, 가해자가 피해배상을 보험사에 맡긴 채 피해자에게 얼굴도 비치지 않는 세태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안전운전에 더 신경을 쓰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해 교통문화 선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자동차 1만 대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3.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5명의 배가 넘는다. 하루 평균 교통사고는 591건으로 OECD 회원국 평균의 11배나 된다. 우리나라의 자동차보험료가 선진국들에 비해 높은 편인데도 교통사고는 잘 줄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헌재 결정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과실 사고를 형사처벌함으로써 전과자를 양산하고, ‘중상해 사고’라도 합의만 하면 형사처벌이 면제되는 만큼 피해자의 무리한 배상 요구로 합의금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형사처벌의 새 기준으로 등장한 ‘중상해’의 범위도 명확하지 않다. 형법 제258조는 중상해를 ‘신체의 상해로 인해 생명에 대한 위험이 발생했거나 불구 또는 불치나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한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교통사고의 특성상 사고 후 뒤늦게 중상해로 판명날 수도 있고, 피해자의 나이나 신체조건 등이 중상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헌재 결정으로 인한 혼란과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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