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聖女재희’

  • 입력 2009년 3월 9일 02시 57분


‘성녀(聖女) 우르줄라.’ 요즘 독일의 부모들은 가정장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을 이렇게 부른다. 일곱 아이의 엄마인 폰데어라이엔 장관의 출산장려 정책 덕택에 아기를 낳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부모의 돈’이란 제도는 출산 후 휴직하고 아이를 돌보는 부모에게 1년간 임금의 67%를 대준다. 아빠와 함께라면 합쳐서 14개월분을 받을 수 있다. 독일의 합계출산율(가임기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기 수)은 2004년 1.33에서 2007년 1.37로 늘었고 2008년에도 아이가 5000명 더 태어났다.

▷한국의 보건복지가족부 직원들은 둘째 아이를 낳으면 2000포인트(200만 원 상당), 셋째 아이 때는 3000포인트(300만 원 상당)의 출산장려점수를 받는다. 세 자녀 이상이면 승진 후보자 명부 작성 때 가점 1점을 받는다. 육아휴직이 육아해직으로 이어질까봐 불안에 떠는 보통 직장인과는 딴판이다. 한 신문 조사에 따르면 복지부 직원들의 평균 자녀수는 1.91명이었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09이다. 복지부 직원만 혜택을 주는 팥쥐엄마식 정책으로는 위화감만 주고 전체 국민의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어렵다.

▷“저출산 문제는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린 문제”라며 대책 마련에 분주한 전재희 복지부 장관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는 이민자를 포용하는 독일식과 파격적 정부지원으로 출산율 반전에 성공한 프랑스식 모델 중 프랑스식을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독일에선 이미 프랑스식을 가미했다. 폰데어라이엔 장관은 “아기가 많아지면 41만7000개의 새 일자리가 생기고 연간 세수(稅收)가 700억 유로 증가한다”고 했다. 출산도 경제정책으로 접근해 예산을 따내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여성경제참여인구를 늘리려면 보육료 상한선을 없애라고 조언했다. 그러면 예산 안 쓰고 출산율도 높일 수 있다. 질 좋은 국공립 보육시설은 부족하고 민간시설은 마음 놓기 힘들다. 서비스시장 규제를 풀면 좋은 민간시설이 생겨 일자리도 더 생긴다. “애국하는 심정으로 다섯만 낳아 달라”고 애걸할 일이 아니다. 복지부 직원들이 받는 혜택을 전 국민에게 확대하면 출산율이 높아져 두 아이를 둔 전 장관도 ‘성녀 재희’라는 말을 들을지 모른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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