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은 서명식에서 “정부의 과학적 결정은 정치나 이념의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도 아닌데 과학이 정치에 묶여 있었다는 말인가. 오바마의 발언이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부를 겨냥한 데서도 드러났지만 적어도 부시 정부 8년간은 그랬다. 이라크 침공의 계기가 된 대량살상무기만 해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도 부시 대통령은 존재한다는 ‘과학적 증거’가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한 ‘과학적’이 사실은 ‘정치적’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부시가 지구온난화에 대한 과학자들의 경고는 무시하고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했다. 줄기세포 연구를 금지한 것도 과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연구목적으로 배아세포를 파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었고 이를 법제화했다. 과학적 사실관계보다는 자신의 기독교적 윤리관에 따른 결정이었다. 그는 대통령 직속 생명윤리위원회 멤버들을 자신과 성향이 같은 보수 인사들로 전원 교체하면서까지 줄기세포 연구 금지를 밀어붙였다.
▷오바마의 등장으로 과학은 마침내 정치에서 자유로워진 건가. 줄기세포 규제가 풀린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오바마 정부의 에너지 장관으로 물리학자인 스티븐 추는 한때 “물 부족으로 20세기 말에는 캘리포니아에서 농사를 짓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 과연 그런가. 하버드대 교수 출신인 존 홀드런 대통령과학기술보좌관도 과거 “(기후변화로 인한) 기근 때문에 2020년까지 10억 명이 죽을 수 있다”고 했지만 빗나갔다. 오바마가 온난화의 위험성이나 줄기세포의 미래를 과신하는 과학자들에게 둘러싸여 잘못된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래저래 과학이 정치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든 것 같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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