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김 위원장, 착한 주민 그만 울리시오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들 사이에 ‘초코파이 계(契)’라는 게 있다. 남한 기업이 1인당 하루 4개까지 초코파이 간식을 준다. 대다수 근로자가 안 먹고 갖고 나간다. 여러 명이 순번을 정해 한 사람에게 몇십 개를 몰아줘 가족이 나눠 먹고 친지에게 선물도 하게 한다. 라면이 나올 때면 국물만 마시고, 불어터진 면발이지만 싸들고 가는 근로자가 많다. 착한 사람들이다. 배고픈 부모, 처자식, 형제가 눈에 어른거려 면발이 목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리라.

3만9000명 가까운 북한 근로자가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있다. 2005년 7000여 명에서 꾸준히 증가했다. 처음엔 주로 개성 주민이었으나 점차 먼 곳에서 통근하는 근로자가 늘고 있다. 출퇴근 버스 211대가 운행되고 있는데 개성만 벗어나면 버스가 못 다닐 좁은 길이 많다. 일부 근로자는 버스길까지 몇십 리를 걷느라 하루 출근에 4시간, 퇴근에 4시간을 써야 한다.

꼭두새벽부터 험한 길을 걷고 타고 해 공장에 도착하면 물로 배를 채우고 일을 시작한다. 점심이 당연히 꿀맛이지만 북측이 밥 공장에서 만들어주는 도시락의 양이 최근에 줄었다. 북의 경제사정을 반영하는 듯하다. 그래도 남측 기업이 제공하는 국과 반찬 덕에 개성공단 근로자 혈색은 고참일수록 좋다. 기본급에 가급금(加給金)을 보탠 월급 70∼75달러에서 큰 몫을 당국이 떼어가지만, 그래도 개성공단은 북 주민들에게 특급 중의 특급 일터다.

개성 깽판 치면 근로자만 배곯아

북 인권에 대해 거의 침묵했던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가 탈북자들을 상대로 최근 8개월간 조사한 실태를 어제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에선 안하던 일이다. 아무튼 이번 조사결과 ‘굶어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58%나 되고, 46%는 ‘배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사람을 굶기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모진 고문(拷問)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계의 산해진미(山海珍味)를 즐긴다고 꼬집을 생각은 없다. 그가 마음만 고쳐먹으면 북 주민들의 굶주림을 많이 덜어줄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개성공단만 하더라도 현재의 1단계에서 2단계로 계획을 진전시키면 근로자를 10만 명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 그러면 북 주민들에게 기적(奇蹟)이나 다름없는 축복이 될 것이다. 계획을 3단계까지 확대하면 더욱 많은 일자리가 생긴다.

이명박(MB)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비핵 개방 3000’으로 요약된다. 북의 핵무기 완전포기가 최종 목표지만, 그 이전에도 대북 경협을 않겠다는 게 아니다. 북이 대화에 나오면 당장 쌀과 비료도 줄 생각이다. MB정부는 북이 핵 포기의 마지막 목표에 동의하는 시점을 본격 경협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개방이란 것도 현 단계에선 3통(通), 즉 통신(通信) 통행(通行) 통관(通關)을 조금씩 하자는 정도다. 그러면 주민 1인당 연평균 소득이 3000달러에 이르도록 돕고, 국제사회의 다각적 지원을 이끌어내겠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남한의 종북(從北)세력뿐 아니라 제1야당인 민주당조차 “MB가 비핵을 앞세우는 것은 결국 대북 화해협력을 않으려는 속셈”이라고 주장한다. 그럼 북의 비핵화를 정부와 국민이 포기해야 한다는 소리인가.

김대중(DJ), 노무현 정부 10년간은 북이 해달라는 대로 끌려가 김 위원장의 주머니를 채워주고 핵 개발, 핵의 운반체인 미사일 개발, 공군력 강화를 도왔다. 노 정부 때, 북 주민이 굶주리는 가운데서도 북한군은 첨단화 작업을 했다. 남측이 듬뿍 준 현금이 어디로 갔겠는가.

核만으론 3代세습 힘들어

MB정부는 이런 ‘묻지 마’ 현금 퍼주기를 줄이는 대신 경협을 제도화하려는 것이고, 북측은 이를 뒤집으려고 협박공세의 극한까지 가겠다는 태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남한 국민이 대선에서 왜 이명박 후보를 택했는지 알아야 한다. 경제를 살리라, 그리고 북에 끌려만 다니지 말라는 거였다. 정권의 성격을 보더라도 MB는 DJ처럼 휘하 장병의 전사(戰死)에도 아랑곳없이 북의 비위나 맞추는 그런 대통령이 될 수가 없다. 미국 민주당 정부도 공화당 정부보다 북을 무르게 대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북이 한사코 핵을 고집하면 남쪽도 괴롭지만, 김 위원장도 백성을 굶기는 판에 핵무기만 갖고 세습왕조를 3대까지 탄탄히 다지기 힘들 것이다. 영육(靈肉)도, 권력도 한순간에 사라지는 법이다. 그 전에 김 위원장이 진정 ‘인민(人民)’을 위하는 길로 들어서기를 권고한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