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라는 시간은 인간에게 도덕관념을 느슨하게 하고 군중심리에 휩쓸리기 쉽게 한다. 어둠이 커다란 가면이 되어 익명의 그늘을 제공하는 탓이 크다. 지난해 광우병 촛불집회 때 시위 장소와 그 주변이 무법천지로 바뀐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환한 대낮이었다 해도 시위대가 경찰관을 집단폭행하고 경찰차를 부쉈을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야간 시위는 과격해지기 쉽고 이 과정에서 불법과 폭력이 빚어질 수 있어서다. 이런 내용을 존치한 현행 집시법은 1989년 민주화 정치세력 주도로 만들어졌다.
▷이른바 진보나 좌파 단체들의 집회는 야간에 집중되고 있다. 오후 늦게 시작해 어두워지면 촛불을 드는 식이다. ‘문화행사’라고 우기지만 그런 목적이 아니라는 건 집회 참가자들이 더 잘 안다. 편법을 동원해서까지 야간집회를 고집하는 것은 밤의 익명성과 선동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 틀림없다. 촛불집회로 몇 차례 ‘흥행’에 성공했던 기억이 야간집회의 유혹을 키웠다고 할 것이다.
▷이들은 한술 더 떠 야간집회 금지가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위헌 제청에 따라 그제 헌법재판소는 공개변론까지 열었다. 기어이 야간집회를 합법화하려는 태세다. 그렇게까지 해서 뭘 이루려고 하는 건지 궁금하다. ‘진보’라고 하면 대개는 밝고 양심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런데도 밝은 낮을 놔두고 어두운 밤으로 숨어드는 ‘진보’라면 비겁하다. 어둠을 걷어내면 맨얼굴이 세상에 드러날까 봐 두려운 것일까. 이런 진보는 불법과 폭력에 의존하는 가짜 진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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