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만 해도 에이즈에 대한 인식은 동성애자가 걸리는 불치병 정도였다. 우리나라는 에이즈 청정국가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우선 에이즈는 불치병이 아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을 막는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지만 강력한 항바이러스 약제가 혈액 내 바이러스 역가를 낮추고 면역체계를 보존해 환자가 잘 견디며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1991년 에이즈에 걸려 농구계를 떠났던 매직 존슨은 18년이 흐른 지금도 건강하게 활동한다. 스위스계 다국적 제약사 로슈가 개발한 치료제 푸제온은 보험가격 합의가 안 돼 국내에 판매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감염자가 급증했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에이즈 감염자는 6120명으로 처음으로 6000명을 넘었다. 이중 1000명가량이 사망했고 생존자들은 보건당국의 관리를 받고 있다. 에이즈가 만연하는 인도 태국 등지에 비해 전체 숫자는 적지만 증가율은 가파르다. 외국인 강사를 비롯한 외국인 근로자의 유입, 젊은층의 개방적 성(性)문화의 영향이 지적된다.
▷에이즈 감염자인 20대 택시운전사가 수많은 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드러나 한 지방도시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의료사이트에는 에이즈 증세를 묻는 문의가 폭주하고 있고 에이즈 검사 신청이 10배 이상 늘었다. 통상 에이즈 감염자는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스스로 기피한다. 면역력이 없어 작은 질병에라도 걸리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가 세상에 복수하듯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1987년 제정된 에이즈예방법이 에이즈 확산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에이즈 관리시스템이 불안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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