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머런 당수는 여당이 책임져야 할 몫까지 대신 용서를 구했다. 유럽 국가 중 최악인 영국의 재정 사정이 마치 야당의 잘못인 양 사과했다. 현 정권을 질타하기는커녕 집권한 지 10년도 더 지났음에도 보수당인 대처와 메이저 정권에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여론 조사 결과 캐머런의 지지도는 59%로 한 달 전보다 17%나 높아졌다. 반면 고든 브라운 총리는 35%에 그쳤다. 캐머런 당수의 솔직한 ‘내탓이오’가 국민의 호감을 샀는지도 모르겠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야당도 경제위기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야당 내부에서 ‘해당(害黨) 행위’라거나 ‘이적(利敵) 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당 대표 자리도 흔들렸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정권은 바뀌어도 경제는 연속선상에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번 경제위기가 터지기 전에 이념형 규제로 경제체질을 약화시켜 놓았다. 그런데도 사과 한마디 없이 경제살리기 법안을 ‘MB악법’이라며 발목을 잡고 있으니 지지율이 바닥을 기는 것이다.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여야를 구별할 필요가 없다. 인도네시아에선 야당 국회의장이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현지 한국 기업을 위해 필요한 법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노조 대표가 외국 바이어에게 납기를 약속하는 판에 야당 당수가 경제 입법에 앞장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민주당이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법안 상정조차 가로막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정당으로 비쳤기 때문”이라는 민주당 김부겸 의원의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경제위기 대처에는 여야가 따로따로일 수 없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