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몰라서 정말 죄송합니다. 택시 운전을 하려면 길부터 알고 핸들을 잡아야 하는 건데 갑자기 사업이 망하고 가족이 길바닥에 나앉게 되니 두서를 가릴 경황이 없었습니다.”
택시 운전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된 기사 아저씨는 6개월 전까지 중소기업체의 사장님이었다고 했습니다. 불황을 이기지 못해 부도 처리하고 빚잔치를 끝내자 집도 세간도 모두 날아가 지금은 가족이 반지하 사글셋방에서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정황을 짐작할 만해 나는 고생과 심려가 많겠다고 기사 아저씨를 위로했습니다. 그러자 껄껄껄 호방하게 웃고 나서 기사 아저씨는 의외의 말을 했습니다.
“난 어릴 때 아주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돈을 버느라 참 많이 고생을 했죠.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고생한 만큼 돈도 벌어보고 실패도 많이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변화를 비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택시 운전을 서너 달 해보니 내가 그동안 세상을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망한 데에는 망할 수밖에 없는 막힘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이 나이에 세상 공부 다시 하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기사 아저씨가 호방하게 웃은 이면에는 인생에서 얻은 나름의 내공이 있었다는 걸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불행이라고 비관할 일을 새로운 인생 공부의 시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적 여유는 허세나 흉내로 드러낼 수 있는 게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인생 공부를 통해 사람의 도량이 형성되는 것이니 좋은 일이 좋은 일만은 아니요 나쁜 일이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걸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택시에서 내리자 맹자의 가르침이 절로 떠올랐습니다.
“하늘이 그 사람에게 큰일을 내리려면, 반드시 먼저 그의 심지를 괴롭게 하고, 뼈와 힘줄을 힘들게 하며,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에게 아무것도 없게 하여 그가 행하고자 하는 바와 어긋나게 한다. 마음을 격동시켜 성질을 참게 함으로써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孟子, 告子章句 下 15)
작가 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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