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계좌란 남의 이름을 빌리거나 도용하여 만든 금융거래 계좌를 말한다. 성실하게 사는 보통 사람들이 다른 사람 명의의 통장을 개설할 필요는 없다. 일부 부패한 정치인이나 공직자, 기업인이 수뢰나 횡령으로 챙긴 ‘검은 돈’을 숨기려고 만드는 경우가 많다.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과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의 수뢰 사건, 전남 해남군 해남읍사무소 7급 공무원의 복지급여 횡령 사건 때도 차명계좌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돈에 대한 욕심은 부자(父子)나 형제 사이도 갈라놓을 수 있다. 돈의 이런 위력 때문인지 계좌에 이름만 빌려준 명의자와 소유자 사이에 돈의 실제 주인을 둘러싼 다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노 전 대통령은 친동생인 노재우 씨와, 박철언 전 정무장관은 어느 대학 무용과 교수와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대주주나 회사 비자금 계좌에 명의를 빌려준 임직원이 돈 욕심이 나서 사고를 치거나 협박을 하는 바람에 골머리를 앓은 기업도 있었다.
▷대법원은 그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의 취지에 따라 차명계좌에 들어 있는 돈은 실제 소유자가 따로 있더라도 계좌 명의자의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아무리 실제 전주(錢主)라도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 만든 계좌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 판결은 금융실명제(實名制)를 다져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내 돈 떼일까 봐 밤잠 설치는 사람이 늘어나고, 이참에 횡재하겠다고 안면 바꾸는 사람도 늘어날 듯하지만….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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