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토머스 프리드먼]美정가에 ‘어른’이 없다

  • 입력 2009년 3월 24일 03시 04분


최근 알고 지내는 인도계 사업가를 만났다. 그의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요즘처럼 어설프다고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무슨 뜻일까. 우리는 지금 100년에 한 번 발생할 정도로 강도가 센 금융위기에 처했으면서도 오히려 예전보다 더 당리당략에 몰두하고 있다. 지도층엔 어른처럼 보이는 인사가 눈에 띄지 않는다. 문제해결을 위해 심도 있게 일을 추진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 대신 의회는 마치 바나나 수출로 유지되는 중남미의 소국처럼 밤새껏 징벌 성격의 세금 법안을 놓고 티격태격 싸우고 있다.

대통령은 NBC 방송의 ‘제이 리노 쇼’에서 자신의 볼링 솜씨를 장애인올림픽 선수와 비교했던 농담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야당은 자신들의 존재가치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인기를 깎는 데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어느 날 공화당 리더 중 한 명인 에릭 캔터 하원 원내 부대표가 방송에 출연한 것을 보았다. 그는 인터뷰 내내 AIG 사태를 당파적 이해를 위해 활용하려는 모습만 보였다. 건설적인 대안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당신에겐 자녀들도 없는가. 당신은 연금 걱정도 없는가. 당신은 우리나라 최대 은행이 파산해도 아무 상관없는 그런 외딴 지역에서 사는가. 당신은 나라가 망하면 공화당이 자동적으로 승리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 생각은 도대체 무엇인가.”

미국을 그저 그런 나라로 만들려고 한다면 금융위기에서 탈출할 방도를 찾기 위해 애쓰는 인사들을 계속 비난해도 좋다. 이를 테면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같은 사람들을 말이다. 결과는 어떨까. 능력 있는 사람 누구도 정부에서 일하지 않을 것이다. 또 공적자금을 받은 모든 은행은 정부의 감독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구제금융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애쓸 것이다. 그러한 행동이 결과적으로 은행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대출능력을 감소시키더라도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AIG 사태를 계기로 본보기를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그들의 보너스 잔치는 충격적이었고 대중의 분노는 정당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대중의 격분을 부채질하기 전에, 의회가 야단법석을 떨기 전에 “내가 처리하겠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는 TV에 출연해 국민을 대상으로 지금 이 나라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들에 대해 정견발표를 했어야 했다. 그는 우리가 처한 금융위기의 깊이는 어느 정도인지, 이를 벗어나기 위해 치러야 할 희생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그 다음 AIG 등 보너스를 받을 자격이 안 되는 모든 사람에게 말해야 한다. ‘국가를 위해’ 보너스를 반납할 것을 당신들의 대통령이 요구한다고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AIG 금융인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 기회, 즉 국가의 거대한 도전에 동참한다는 명예를 안겨준다면 장담하건대 보너스로 나간 세금의 대다수가 자발적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사람들을 분발시키는 지도력은 강제로 시키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을 만든다. 그렇게 된다면 대통령의 권위도 훨씬 높아질 것이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법안을 다루는 의원들도 이제는 당리당략을 떠나 행동해 주길 바란다. 우리는 지금 영감적 리더십의 부재 속에 살고 있다. 미국은 불행히도 절대 망하지 않을 만큼 큰 나라가 아니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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