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란 법인세나 소득세에 대해 전혀 세금을 물리지 않거나 아주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대신 계좌 유지나 법인 설립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국가나 지역을 말한다. 카리브 해의 바하마·버뮤다 제도·케이맨 제도, 유럽의 리히텐슈타인·스위스·모나코·안도라, 말레이시아의 라부안 섬이 대표적이다. 조세피난처는 세금 우대뿐 아니라 외국환 관리 규제가 적고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보장돼 탈세와 ‘검은돈 세탁’의 온상으로 꼽힌다. 그동안 세계경제를 교란했고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책임이 작지 않은 헤지펀드의 서류상 본사도 대부분 조세피난처에 있다.
▷이런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한국인들이 적발됐다. 케이맨 제도 등 조세피난처에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빼돌린 기업체 대표와 고액 자산가 45명이 국세청에 덜미를 잡힌 것이다. 이들은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탈루(脫漏)소득을 외국인 명의로 조세피난처에 은닉 관리하는 등의 교묘한 수법을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세피난처에 돈을 빼돌린 뒤 외국인이 투자하는 듯이 꾸며 한국에 다시 송금해 부동산을 사들인 사람도 있었다.
▷경제가 어려우면 사람들의 마음이 팍팍해지기 쉽다. 이런 때일수록 ‘가진 사람들’이 절제와 금도를 잊으면 계층 간 갈등과 사회적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와 법원도 해외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자금 도피와 탈세에 대해 법적 경제적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한다. 악질적 경제범죄에 관대한 것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아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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