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니컬러스 크리스토프]피임보다 여성지위 향상이…

  • 입력 2009년 4월 7일 02시 54분


국제사회는 세계 각국의 빈곤 퇴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지금과 같아서는 열 번째 자녀 출산을 앞둔 아이티의 나호미 너큐레 씨 같은 여성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이다.

각국의 가족계획은 20여 년간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너큐레 씨는 희미해진 가족계획과 빈곤의 상징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30세인 그녀는 처음에는 두 명의 자녀만 낳으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열 번째 아이 출산을 앞둔 임신 8개월째다. 너큐레 씨가 사는 아이티의 슬럼가에는 그의 초등학생 아이들이 옷도 걸치지 못한 채 어머니 곁에서 뛰어놀고 있다. 그의 가족이 사는 월세 6달러짜리 판잣집에선 밤에 네 명은 침대에서, 여섯 명은 바닥에서 잠을 청한다. 집안에는 먹을 것도 눈에 띄지 않고 아이들의 학비조차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원하지 않는 자녀 출산을 억제하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면 너큐레 씨 가족의 삶을 개선할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세계엔 이런 사람이 수백만 명이나 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너큐레 씨는 임신을 원하지 않는데도 가족계획을 하지 않는 2억 명의 여성 중 하나다. 유엔은 이들 여성이 매년 7000만∼8000만 건의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1900만 건의 낙태가 자행되고 15만 건에 이르는 모성사망(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사망)이 발생한다.

피임 캠페인은 1960, 70년대 확산됐으나 그 이후 수그러들었다. 또 중국, 인도에선 산아제한이라는 강제 조치가 행해지는 등 의도가 변색되기도 했다. 낙태 정책도 문제를 야기했다. 이는 유엔인구기금(UNFPA)에 대한 미국의 지급액을 삭감하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는 원하지 않는 임신과 낙태의 증가로 이어졌다.

가족계획은 더 많은 피임도구와 약을 필요로 한다. 아이티에는 가족계획 전문병원이 있지만 병원비가 상당히 비싸다. 이곳에선 자녀를 덜 낳기 원하면서도 여성의 25%만이 피임을 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하다. 너큐레 씨의 사례를 보면 피임이 어려운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당초 그는 주사로 시술하는 피임법을 시도했으나 그로 인한 출혈이 심하자 두려워졌다고 한다. 병원 측은 너큐레 씨에게 상담이나 설명도 해주지 않았고 결국 9개월 만에 이 같은 피임법을 중단하게 됐다. 성병 등 질환으로 자궁내장치(IUD)도 사용할 수 없었다.

너큐레 씨의 첫 남편은 그가 두 번째 아이를 출산한 뒤 가족 곁을 떠났다. 재혼한 남편은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해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새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가 몇 명 더 태어났다. 너큐레 씨는 남편에게 콘돔을 사용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아이티의 사회 분위기 때문에 남편의 뜻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열 번째 아이를 임신한 뒤 남편은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산아의 불공평’이라는 책에선 병원에서 여성 환자를 더 많이 배려하고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전반적인 노력이 피임기구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최선의 방법은 젊은 여성을 교육하고 직업훈련을 통해 스스로 돈을 버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최선의 피임 방법은 피임약 등이 아닌, 젊은 여성에 대한 교육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너큐레 씨 사례는 이 문제에 대한 국제적 지원이 쉽지는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대안도 없음을 이 사례는 잘 알리고 있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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