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신치영]美이끄는 1%리더들의 경쟁력

  • 입력 2009년 4월 13일 02시 57분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의 일상에 익숙한 사람이 미국에서 살아가려면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식당의 서비스나 대형 할인점 계산대는 한없이 느리다. 고장 난 제품에 대해 물어보려고 제조업체 고객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어 직원과 통화를 하려면 자동응답시스템(ARS)과 한참 동안 씨름을 해야 한다.

얼마 전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로 출장 갔다가 돌아올 때의 일이다. 오전 10시 출발 예정인 뉴욕행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30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탑승구 입구에 ‘DELAY(출발 지연)’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을 뿐 왜 지연되는지 설명조차 없었다. 알고 보니 다른 도시에서 비행기가 늦게 출발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항공사 직원들이었다면 항의하는 승객들을 달래고 사과하느라 분주했을 텐데 이곳의 직원들은 너무 느긋해 보였다. 한 직원은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야 하는데 도대체 언제 출발하느냐”고 따져 묻는 승객에게 “나도 모르겠다”고 짜증을 내며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미국에 제 시간에 출발하지 않는 비행기가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항공사 직원들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미국에 살다 보면 서비스 분야 직원이나 하급 공무원들의 부족한 업무 지식과 미숙한 일 처리로 애를 먹는 일이 많다. 두 달 전 주재원으로 나와 딜러를 통해 새 차를 구입한 지인은 영문도 모른 채 경찰관에게 붙잡혔다. 차량 앞 유리창에 유효기간이 찍힌 차량검사 스티커가 붙어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제야 그는 모든 차량에는 차량검사증이 부착돼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경찰관이 봐주지 않았더라면 대리점 직원의 ‘깜빡’ 실수 때문에 180달러의 벌금을 낼 뻔했다.

미국에 사는 지인들과 이 주제로 얘기를 나누면 사례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상사 주재원 비자를 가진 사람에게 운전면허증 유효기간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모르는 담당직원, 은행 거래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했더니 “한 가지 서류에 사인을 안 받았으니 지점에 다시 와 달라”고 전화하는 은행직원, 계산기를 못 다뤄 손님을 세워놓고 매니저를 애타게 부르는 슈퍼마켓 점원….

이런 일을 자주 겪다 보면 ‘이렇게 사람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이 나라(미국)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할까’라는 의구심이 절로 든다. 미국에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면 대부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리더십과 이들이 만드는 시스템 덕분’이라고 말한다. 정부 의회 기업 등 각계에 포진해 있는 1%의 리더들이 미국을 이끄는 힘이며, 일반인들의 경쟁력이 떨어져도 리더들이 만드는 시스템이 사회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월가의 탐욕으로 비롯된 금융위기로 미국경제가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지만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 의회가 보여준 신속한 대응에 많은 전문가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미 정부와 의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돈맥경화’를 풀기 위한 사상 초유의 대응조치와 공격적인 경기부양 결정을 내린 덕분에 미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장기침체는 피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월가 안팎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미국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한국의 개인이나 기업의 경쟁력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슬을 꿰어 보배를 만들 듯 개개인의 열정과 능력을 결집할 리더십이다. 그동안 우리는 국민을 ‘네편 내편’으로 갈라놓고 서로 반목하고 다투게 만드는 ‘분열의 리더십’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지 않았는가.

신치영 뉴욕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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