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점은 특히 박정희가 전범적이다. 나는 박정희 시대에 대해 대부분의 동시대인은 가벼운 ‘스키조프레니아(정신분열증)’ 증상을 보인다고 적은 일이 있다. 좌우 양극단의 과격한 찬반 논자들을 제외한다면 일반 국민은 박정희와 박정희 시대를 전적으로 긍정만 하지도 못하고 전적으로 부정만 하지도 못한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이처럼 긍정 부정의 양면을 다 까발린 나의 박정희론에 대해 그에 추종했던 측이나 저항했던 측이 다같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 준 사실이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론은 아직 쓰지 못했다. 그건 뒤로 미루고 여기선 요즈음 세상의 화제를 독점하다시피 한 노무현 대통령론을 먼저 시도해 보고자 한다. 우선 노무현은 세계를 앞서가는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이 배출한 최초의 인터넷시대의 대통령이다. 이회창과 정몽준 등 막강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끝내 그에게 대선 승리의 대박을 안겨준 것은 그의 캠프만이 능히 동원할 수 있었던 누리꾼 유권자들이었다. 그는 청와대에 입성한 뒤에도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열어 국민과 소통한 첫 대통령이 됐다.
언변에 능한 ‘인터넷 대통령’
그는 신군부 출신의 두 대통령을 제쳐 놓으면 많은 저서를 내놓은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과는 달리 제대로 된 저서가 없는 유일한 문민 대통령이다. 그는 엘리트주의적인 문자 미디어 대신 오늘날의 변덕스러운 ‘휘발성의(volatile) 유권자’ 마음을 그때그때 포착하고 소구할 수 있는 ‘레토릭(언변)’의 달인이었다. 고대 서양의 레토릭은 원래 재판정에서 발전했다. 변호사는 그러한 언변에 능한 직업인이다.
그러고 보면 역대 대통령 중 노무현은 최초이자 아직은 유일한 변호사 출신이다. 그는 뛰어난 언변으로 ‘5공 청문회의 스타’가 되어 일약 여론의 각광을 받게 됐다. 독학으로 고시에 합격은 했으나 지방 상고 졸업장이 학력의 전부인 그는 학벌도 문벌도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다. 그러한 순정(順正)의 서민이 국가원수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것은 노력만 하면 없는 사람도 대성할 수 있다는 ‘코리안 드림’의 성공사례를 제왕적인 수준에서 시위한 역사적 장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국가 원수란 아무래도 노무현에겐 버거운 자리란 말인가. 아니다 학벌 좋고 문벌 좋은 어느 누구에게도 그건 힘겨운 자리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권좌에서 물러난 전직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그를 증언해주고 있다. 역대 대통령의 예외 없는 실패는 어느 특정인의 실패가 아니라 대통령책임제 자체의 실패로 봐야 마땅할 것이다. 노무현은 재임 중에도 꾸밈없는 서민적인 말투로 “대통령 노릇 못 해 먹겠다”는 막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기조차 했다. 나는 그러한 노무현의 기발한 언동을 우리가 대통령책임제를 재고해야 되는 당위성을 입증 시위해준 것이라 보고 고마운 일로 평가하기도 했다.
참으로 당혹스러웠던 일은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 노무현이 대한민국의 도덕적 정통성을 국민 앞에서 내놓고 부정한 경우다. 일종의 정신적 ‘친부(親父)살해’의 악몽을 보는 듯한 ‘국가원수의 국가부정’은 정신분석학적으론 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 할 것인가. 아니면 막된 집에서 가난에 절망한 자식이 제 집에 불을 지르는 방화 충동이라 할 것인가. 다행히 노무현이 도덕적으로 불 지르려 한 대한민국은 쉽게 훨훨 타버릴 초가삼간은 이미 아니다.
좌파 도덕주의의 허상과 위선
그의 과격한 도덕주의와 좌파적 입장에서 쏟아대는 대한민국의 (그를 뺀) 기존체제에 대한 비난 공격은 자칫 “심장은 좌측에 있다”고 믿는 젊은이들의 좌경화를 선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좌파는 참으로 운이 좋은 세대다. 광복 직후의 남한 좌파는 6·25전쟁과 정전 직후의 남로당에 대한 김일성의 대대적 숙청으로 피바람을 맞으며 좌익소아병에서 치유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1980년대 후의 좌파는 우선 1989년 실존하는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총체적 붕괴로 소아병에서 공짜로 치유될 기회를 얻었다. 그러고도 아직 치유되지 못한 사람들은 최근 밝혀진 노무현 게이트를 보며 다시 한 번 좌파 도덕주의의 허상과 위선을 직시하며 환상에서 현실로 깨어날 기회를 얻고 있다. 나는 여기서도 노무현은 한국현대사에 계몽적인 역할을 했다고 봐주려 한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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