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월스트리트

  • 입력 2009년 4월 17일 02시 56분


1973∼1985년 미국의 전체 기업이 100달러를 벌면 그중 금융계 몫은 16달러였다. 그 뒤 1986년엔 19달러로, 1990년대엔 21∼30달러로 뛰었고 2000년대 들어 41달러로 불어났다. 금융계의 자기 몫 키우기는 ‘월가(街)의 독점’으로 비난받기도 한다. 영화 ‘월스트리트’(1987년)에서 기업사냥꾼 게코(마이클 더글러스 분)는 부자를 꿈꾸며 한 수 배우겠다고 찾아온 버드(찰리 신 분)에게 “탐욕이 선(Greed is good)”이라고 가르친다.

▷미국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CEO)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지난주 연설에서 “지금 세계가 금융인에게서 듣고 싶은 말은 ‘뉘우침’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터진 이후 2년 동안 가벼운 ‘회개’의 말이라도 금융인에게서 나온 건 드문 일이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은 금융위기에 대한 자기반성을 했지만 금융인들은 대부분 “정부가 조금 더 도와줬다면 은행을 살렸을 것”이라며 남 탓을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4일 워싱턴의 조지타운대에서 연설하면서 “월가의 고소득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조언했다. 부패와 방종에 빠진 금융 대신 생산적이고 보람 있는 직장을 찾으라는 거였다. 월가에서 감옥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기에 ‘감옥에서 편하게 지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컨설턴트까지 나왔을까. 영화 속의 버드도 큰돈을 벌고 게코와의 싸움에서 이겼지만 결국 감옥에 갔다. 그렇지만 그동안 화려한 월가 입성(入城)을 꿈꾸며 공부했던 학생 중 상당수는 금융위기 이후 월가의 일자리와 인턴 기회가 줄어든 것만 불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월가는 두 얼굴이다. 쓰러진 금융회사 직원들은 회사에서 나와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반면에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액을 버는 사람도 있다. 경제잡지 포브스가 꼽은 ‘고소득 펀드매니저’ 1위인 제임스 사이먼스는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라는 헤지펀드를 운영하면서 작년에만 28억 달러, 우리 돈으로 3조7000억 원 이상을 벌었다. 금융시장이 급변해 상위 20명 중 12명이 새 얼굴로 바뀌었다. 기회와 위험의 양극이 공존하는 월가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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