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북극의 눈물’과 프랑켄슈타인

  • 입력 2009년 4월 22일 02시 58분


환경호르몬-온난화…

지구에 ‘괴물’을 만든 우리들이 바로 괴물

환경은 정치적 사안일까, 윤리적 문제일까? 사람들은 대개 환경을 윤리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구를 구해야 한다, 지구 온난화를 막아야 한다는 표어는 환경을 윤리적 차원의 문제로 다룸을 잘 보여준다. 환경에 관련된 이야기가 주로 당위의 형태를 띠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이다. 윤리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 하지만 한편, 윤리란 생물학적 요구보다 유보되기 쉬운 형이상학적 개념이기도 하다. 사람은 먹고 자고 입는 문제를 해결한 뒤에야 윤리를 고려한다. 환경 문제를 여유로운 자의 배부른 고민이라고 보는 시선도 여기서 비롯된다.

4월 22일은 40번째 지구의 날이다. 증시가 살얼음판을 기고 환율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지금, 환경 문제는 여유로운 고민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빚 때문에 자살하고, 재산이 반 토막 나는 상황에서 ‘환경을 지키자’는 제안은 희망이라는 말만큼이나 추상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모든 문제를 숫자로 환산하는 이들에게 환경 문제는 종말론처럼, 언젠가 다가올 만성적 불안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들은 신경증 환자를 다루듯 환경론자에게 말한다. “이봐, 지금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잖아”라고 말이다.

환경이 구체적 문제로 다가오는 순간은 그것이 시각적으로 다뤄질 때이다. ‘북극의 눈물’이나 ‘불편한 진실’을 볼 때만큼은 멀리 느껴졌던 환경 문제가 실감나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머나먼 미래로 미뤄뒀던 환경을 클로즈업해 본다. 아주 작게 여겨졌던 만성적 공포를 급성 질환으로 체험해 보는 것이다.

“환경문제는 개인 윤리 아닌 정치적 협의 대상”

환경 문제의 시급함을 알리는 데 이런 작업은 꽤 효과가 있다. 지구의 오존층이 얇아지고 북극의 얼음이 녹는다는 사실은 얼음을 찾아 헤매다 물에 빠져 죽는 북극곰을 통해 확인된다. 문제는 이런 장면조차 시청자나 관객에게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 받아들여진다는 데에 있다. 사람들은 환경 문제에 정서적으로 공감하지만 현실 속에서 실행하려 하지는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환경 문제가 시급해지는 순간은 인간이 남용한 환경이 인간을 역습할 때이다. 자신이 만든 상처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순간, 환경 호르몬이나 광우병 문제처럼 말이다. 2000년대를 사는 우리는 과거 공상과학(SF) 영화에서 다룬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를 모두 경험한다. 게놈 프로젝트 덕분에 질병을 예방할 수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예측 불가능한 기후 속에 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메리 셸리의 1918년 작 ‘프랑켄슈타인’은 이 아이로니컬한 현실에 대한 묵시록처럼 받아들여진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어머니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에 분개해 영구한 생명을 창조하고자 한다. 그는 시체를 조합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낸다. 박사의 피조물은 자신을 만들어 낸 과학자의 통제를 벗어나 괴물이 되고 만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괴물의 이름으로 아는 프랑켄슈타인이 실은 그것을 만들어 낸 박사의 이름이라는 사실이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괴물을 만들어 낸 자, 그가 바로 괴물이다.

철학자 헤겔은 인간을 “죽을 지경으로 병든 자연”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새로운 균형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인간의 노력은 오히려 자연의 상처를 더 벌어지게 할 뿐이다. 눈 때, 손때 묻은 환경은 상처를 위험으로 돌려준다. 환경호르몬이나 이상기후와 같은 현재의 환경 문제들은 과학이 선사해 준 편리와 혜택을 남용한 결과로 탄생한 괴물이다.

환경은 당장의 문제로 가시화되지 않는다. 환경의 위협은 무의식처럼 일상 속에 잠재해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환경 문제가 위협이 되는 순간들을 목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환경 문제는 개인의 윤리가 아닌 정치적 협의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선택이 아닌 의무로, 막연한 강령이 아닌 제도적 규제를 통해 환경은 지금의 문제가 될 수 있다.

강유정 문학평론가·고려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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