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우리 몸의 지배자이자 마음의 원천이다.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생명유지가 어려울 뿐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지기능의 장애로 바로 이어진다. 뇌를 이해하면 치매와 같은 노인성 뇌질환 치료를 통해 점차 가속화하는 고령화 시대의 삶의 질 향상에 공헌할 수 있다. 또 ‘꿈의 컴퓨터’인 뇌의 작동원리를 모방하면 공상과학영화 ‘아이로봇’처럼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만들 수 있다. 뇌는 근원적으로 매우 복잡하여 전체를 이해하려면 생명과학과 의학뿐 아니라 심리학 물리학 공학 등 학제 간 접근이 필요하다. 따라서 뇌 연구는 자연적으로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을 아우르는 최고의 융합학문이 될 수밖에 없다. 뇌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기초원천기술은 미래 신산업 창출의 보고이자 미래국가경쟁력의 견인차여서 각국이 앞 다퉈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8년 ‘뇌연구 촉진법’을 제정하면서 뇌 연구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범정부 차원에서 1차 기본계획을 수립한 뒤 지난 10년 동안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총 3000억 원을 투자해 다양한 뇌 특화 연구 성과와 함께 연구 인력이 크게 늘었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뇌 분야의 우수한 인적자원에 비해 연구투자는 아직 미국의 164분의 1, 일본의 17분의 1 수준이고 국가적인 뇌 연구 인프라는 크게 부족한 현실이다.
작년 말 정부는 뇌 연구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향후 10년간 1조50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제2차 뇌연구촉진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기존 뇌 연구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국내 IT, NT 융합을 통한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국가 뇌융합 연구 전문기관을 설립하여 이를 선도하기 위해서다. 세계적 뇌 강국으로 부상하려는 야심 찬 계획은 유감스럽게도 현재 표류하고 있는 상태다. 1차 계획 종료 후 후속 사업의 시행계획을 제때 수립하거나 실행하지 못해 연구의 연속성이 단절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뇌 연구 선점 경쟁이 가속화하는 시점에 관련기기는 노후화되고 신진 연구 인력이 현장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힘들게 구축한 연구 인프라가 와해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가적으로 뇌 연구의 방향을 책임지고 조율하는 브레인이 없다는 점이다. 뇌연구촉진법에 의한 최고결정기구인 뇌연구촉진심의위원회는 일괄 폐지대상으로 지목됐고 실무 추진을 위한 위원회도 올해 초 구성했지만 활동이 미약해 식물인간 상태나 마찬가지다. 국가 뇌 연구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이들 위원회가 무뇌증을 극복하고 국가 뇌 연구의 컨트롤타워로 하루빨리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와 병행하여 국가 뇌 연구원 설립의 전략적 추진과 기초원천 연구지원의 확대를 담은 국가 뇌 연구 포트폴리오의 구축 등 투자계획의 실행력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우수한 인재이다. 이들의 창의적 두뇌가 가진 무한한 잠재역량의 발휘에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 성큼 다가온 고령화 사회와 융합기술의 시대를 선도할 뇌 연구에 획기적으로 투자하기 위해 컨트롤타워 기능을 빨리 복구해서 ‘두뇌 강국 코리아’의 꿈을 힘차게 펼쳐나가자. 관심과 투자 없이 발전이 가능한 분야는 없다.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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