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돼지와 사람

  • 입력 2009년 4월 28일 02시 55분


‘개미’ ‘뇌’ 등의 작품으로 한국에도 독자가 많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또 다른 작품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결말이 충격적이다. 소설은 네발 동물이 두 발로 걷는 유인원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유전(遺傳)고리(미싱링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고생물학자가 살해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결말에서 아버지들의 아버지라고 상정한 인류의 조상은 바로 돼지였다.

▷돼지는 해부구조와 생리적 특성이 사람과 많이 닮았다. 과학자들이 돼지를 대상으로 장기이식용 동물복제 실험을 하는 것도 그래서다. 돼지는 돼지인플루엔자 말고도 조류인플루엔자나 사람독감에도 걸린다. 이때 조류인플루엔자와 사람독감이 돼지 몸속에서 유전물질을 교환해 유전자 재조합(돌연변이)이 일어나면 새로운 바이러스가 만들어진다. 이 신종바이러스는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감염된다. 돼지가 인수(人獸)공통 전염병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바꾸었던 대유행병(팬데믹)인 천연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같은 질병은 모두 벼룩 쥐 모기 같은 동물의 질병에서 진화한 전염병이다. 공수병은 사람이 광견병에 걸린 개에 물리면 걸리는 병이고, 브루셀라병에 걸린 소와 접촉하면 사람도 브루셀라병에 걸린다. 후천성 면역결핍 바이러스 질환인 에이즈는 아프리카 침팬지에서 시작해 전 세계 인구의 6%에 근접하는 약 4억 명을 감염시켰다. 인간광우병도 광우병에 걸린 소의 위험 물질을 반복적으로 먹은 사람에게서 발생한다.

▷항생제의 발견으로 많은 박테리아 질환이 퇴치됐지만 동시에 신종 전염병이 생기는 현상을 두고 미국 컬럼비아대 해럴드 뉴 교수는 “세균은 인간보다 똑똑하다”고 말했다. 인간이 백신이나 치료약을 만들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미생물이 진화하는 현상을 빗댄 것이다. 1968년 80만 명이 사망한 홍콩독감, 2002년 아시아를 강타한 사스, 근래 베트남을 타격한 조류인플루엔자의 진원지가 중국 광둥 성인 점은 우연이 아니다. 광둥 성에서는 오리 닭 등 가금류와 소 돼지를 인가 근처에서 한꺼번에 기른다. 돼지가 그 중심에 있다. 조류인플루엔자보다 돼지인플루엔자가 훨씬 무서운 것은 이번 멕시코 미국 사태처럼 바로 사람이 잘 감염되기 때문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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